출발부터 “사당화”우려/정선구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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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일 오전 서울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에서 열린 통일국민당 창당대회는 우선 그 화려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내로라하는 인기가수와 개그맨들이 대거 출연,식전 분위기를 고즈넉하게 북돋웠으며 신생 정당으론 기동성있다싶게 당전속합창단에 역시 당전속의 초대형 90인조 관현악단·치어걸·멀티비전까지 등장,대형 쇼무대를 방불케 했다.
기존 정치판에 젖어온 일부 창당인사들조차 지금까지와는 색다른 광경과 정서에 다소 얼떨떨해하는 분위기였다.
더욱이 1시간여의 여흥이 끝난뒤 이어진 본행사는 정주영 대표최고위원을 치켜세우는 발언 등으로 이어져 정대표개인을 위한 집회인지,공당창당식인지 어리둥절케할 정도였다.
홍성우 전의원은 정대표를 가리켜 『지도자 부재시대에 홀연히 나타난 지도자』『죽은 철학을 소생시킬 수 있는 선생』『경제불도저』등 온갖 수사를 동원,치켜세웠다.
행사 중간중간 『정주영』을 외치는 연호로 열기도 고조됐다.
이날 창당대회는 「기존틀」을 벗었다는 점에서 적지않은 인상을 준 것은 틀림없으나 국민당이 표방한 「깨끗한 공당」「정책·이념정당」과는 어딘가 거리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석연찮은 구석을 남겼다.
정씨가 대표 최고위원을 맡는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당연히 정회장이 당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앞다퉈 충성을 맹세하는 분위기였고 심지어 「1인정당 배제」를 주장해온 김동길 전교수까지 「정씨휘하」임을 자인했다.
정씨의 아들 정몽준의원이 당3역에 해당하는 정책분과위원장에 유임된 대목까지를 지켜보며 정가에선 벌써부터 「정씨사당」 또는 「부자정당」이라며 비아냥거림이 뒤따르고 있다.
가뜩이나 국민당의 등장을 지켜보는 세인의 시선이 곱지않은 참에 창당을 전후한 이같은 모습은 국민당의 앞날에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은 일이라 하겠다. 「재벌당」「현금당」이란 상대 정당들의 비난과 영입자에 대한 「수십억원 유혹설」까지 난무하는 판에 기자들을 상대로 거액촌지를 시도한 것도 스스로를 부정적틀로 옭아매는 행위임을 왜 모를까.
정씨의 말마따나 진정 『구국의 일념』에서 당을 만들게 됐다면 이처럼 돈정치·1인정당운영이나 또다른 지역감정을 부채질하려는게 아닌가 하는 세인의 의혹부터 불식시켜야 할 것이다.
그작업은 휘하사람들이 『회장님,회장님』하고 알아서 기는 풍토를 없애는데서부터 출발해야될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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