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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대학간 벽 허물었다/타대출신 교수 “입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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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유학 「모교박사」 20명 제쳐/“출신보다 실력이 중요” 서울대/물리과 고대박사 김선기씨 채용
고려대에서 학·석·박사학위를 받은 30대 초반의 물리학도가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가 됐다.
서울대는 최근 본부 인사위원회(위원장 백충현 교무처장)를 열고 「외부인사」인 김선기씨(32·서울 숭인2동)를 물리학과 조교수로 채용키로 결정했다.
학사과정은 물론 석·박사까지 서울대와 전혀 무관한 김씨를 교수로 공채한 것은 일제때 미국·일본 등지에서 대학을 나온 기성교수들을 제외하곤 거의 전례가 없는 일로 학내외에 비상한 관심과 함께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게다가 실력과 관계없이 타대학 출신자 채용을 무조건 기피하는 국내학계의 배타적인 학문풍토속에서 「순수국내파」인 김씨가 같이 응모한 서울대 출신 하버드·예일·MIT공대 등 세계 굴지의 해외박사 20여명을 제치고 「자연대의 꽃」으로 불리는 물리학과에 입성한 것을 두고 학계에서는 「발상의 대전환」 또는 「혁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씨가 서울대의 「철제문」을 두드린 것은 지난해 7월. 물리학과 고윤석교수등 3명이 올해 2월말로 정년퇴임키로 돼있어 학교측이 핵·실험물리,핵·이론물리,물리학전반 등 3개 분야에 걸쳐 모집공고를 낸 것을 보고 응모한 35명중 한명이었다.
김씨는 비록 「학벌」은 뒤떨어지지만 박사학위논문을 일본의 고에너지연구소(KEK)에서 한·중·일·미 4개국 학자들과 겨루며 연구한 것을 토대로 완성했고 90년부터 미 뉴저지주 러트거스대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2000년대 완공 예정인 미국 초전도가속기(SSC)의 국내 유일 회원이라는 점에 한가닥 희망을 걸었다.
SSC란 미국이 83억달러를 들여 텍사스에 건설중인 최첨단 고에너지 실험시설로 2000년대에 완공되기 때문에 차세대 젊은 과학도를 회원으로 위촉했던 것.
『원서를 낸뒤 서울대 물리학과·MIT공대를 수석졸업하고도 서울대에 남지못하고 지방대학에 갈 정도로 문이 좁고 응모자 가운데 30명이 서울대 출신이어서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어요.』
김씨는 그러나 세차례의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27명으로 구성된 물리학과 1차 전체교수회의에서 14명의 후보로 뽑히게 됐다.
학교측은 김씨를 불러 강의·실험·연구능력을 테스트했고 과교수회의의 두차례 표결끝에 모두 5명이 통과된 실험물리분야에서 과반수를 얻은 김씨를 「민주적으로」 낙점하게 됐다.
장회익 물리학과장은 『「간판」이 가장 뒤떨어지는 김씨를 채용한 것에 대해 교수·졸업생 일부가 불만을 표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작은나라에서 출신학교를 따져서야 되겠느냐」는 분위기가 우세했다』고 말했다.
김씨를 학부때부터 지도해온 고려대 물리학과 강주상교수(50)는 『연구의 대물림을 위해 「자기학생」을 쓰는게 인지상정인데 서울대의 이번 결정은 대학간 벽을 허문 쾌거』라고 흐뭇해 했다.
서울 보성고 출신으로 토건업을 하는 중류가정의 4남1녀중 장남인 김씨는 고려대 물리학과 동기동창인 명성숙씨(31)와의 사이에 딸 하나를 두고 러트거스대와의 연구원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5월말 귀국,교수활동을 시작하게 된다.<오영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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