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별 왕자의 경제이야기] (32) 강한 원화는 언제 필요한 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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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은 그 나라의 경쟁력이 응축된 수치

소왕의 어렵다는 반응에 이강은 설명을 보탰다. 왜 환율이 한 나라의 경쟁력이 응집된 수치인지에 대해 초점을 맞췄다.

"1997년 12월 한국에 이른바 외환위기라는 게 덮쳤어. 외환은 외국돈, 그중에서도 언제든지 교환가치를 지니고 있는 경화( 硬貨, hard currency)를 뜻하지. 다시 말해 달러나 유로나 엔화 같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돈이지. 외환위기의 최종 모습은 이런 국제통화가 바닥난 상황을 말해."

그는 경화가 없으면 왜 국가적으로 위기냐고 물었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치러야할 돈이 없으면 부도가 났다고 말하지. 국가적으로는 달러와 같은 경화가 없으면 부도가 나는 거야. 외국에서 돈을 빌려오면 이자를 줘야 하는데, 이때 이자는 반드시 경화로 줘야해. 한국 돈은 국제 상거래에서 통용되는 돈이 아니기 때문이지. 한국 돈도 받아준다면 정부가 발권력을 동원해 돈을 찍어 주면 그만이거든. 기업이 외국에서 제품이나 원자재를 수입하고 대금을 지불할 때도 마찬가지야. 이때 결제통화도 당연히 경화지. 달러가 없으니 국제 금융거래는 물론이고 수출입도 막히게 된 거야. 이게 바로 국가 부도 상황이지."

이강은 결제통화에 대해 좀 더 설명했다. 다른 나라 돈과 언제나 교환되는 돈이 경화고, 자유롭게 교환되지 않는 돈은 연화(軟貨, soft currency)다. 그 중간쯤에 있는 돈은 준경화(準硬貨,semi-hard currency)라 하고. 그러면서 최근 동남아에서는 한국 돈을 그 나라 돈으로 바꾸어주는 나라가 점점 늘고 있다고 했다. 예컨대 태국으로 여행갈 때 달러나 태국 돈으로 미리 환전해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원화가 점점 준경화가 돼가는 한 증거라고 했다. 그래서 아무 나라에서나 한국돈을 바꾸어주는 때가 되면 원화가 경화로 대접받다는 것이다. 동남아나 중국의 일부 상점에서 원화를 받아 주는 것은 한국 경제가 커지고 튼튼해진 덕이다. 한국 돈을 별 위험 없이 자기 나라 돈이나 달러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원화를 받아주는 것이다.

설명을 듣던 소왕이 연화가 경화가 되고, 경화도 연화가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강은 과거 일본 경제가 보잘 것 없던 시대 엔화는 연화였지만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지금은 경화 대접을 받는다고 대답해줬다. 이강은 다시 외환위기와 환율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97년 말 환율은 1달러에 2000원까지 육박했지. 불과 넉 달 전에 900원 안팎이던 것이 말이야. 환율이 치솟는다는 건 뭘까. 한마디로 원화의 국제가치가 추락하고 있다는 뜻이야. 1달러를 사는데 900원이면 되던 것이 이젠 2000원을 줘야 하니까. 다른 말로 한국 경제를 믿지 못하게 된 거야. 한국엔 달러가 없기 때문에 돈을 빌려주면 이자를 받기 힘들다, 물건을 팔아도 대금을 받기 힘들다는 평가가 국제사회에 번진 것이지."

이에 대해 소왕은 '달러가 없어서 이런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면 달러를 빨리 많이 확보하는 게 급선무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렇지. 문제의 핵심은 달러 확보야. 그런데 달러를 확보하는 방법은 뭘까. 상품을 많이 수출해 달러를 벌어오든지, 국내의 돈 되는 부동산이나 알짜 기업을 외국에 팔든지, 선진국 은행에서 달러를 빌려오든지 셋 중 하나가 될 거야. 그런데 수출은 일시에 확 늘어나기 힘들어. 그래서 외환위기 때 한국 정부는 단기적으로 나머지 두 가지에 주력했어. 국내 자산의 헐값 세일이 이때 일어났던 거야. 제 값어치보다 훨씬 싸게 파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일어났어. 급한 쪽은 우리였으니 제값을 부를 수 없었던 거야. 그래도 무조건 외국 자본, 다시 말해 달러만 끌이 들이면 박수를 받는 상황이 벌어졌어. 해외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면 높은 이자를 물어야 했어. 한국은 투자 위험이 높다면 그만큼 높은 이자를 요구했던 거지."

강한 원화는 외국에서 힘을 쓰지

이강은 다른 나라와 거래 없이 혼자서 자급자족을 하는 나라에선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그런 나라는 없었다. 가장 폐쇄적인 나라로 꼽히는 북한도 달러를 벌기 위해 한때 위조 달러를 만들고, 마약 거래에 손을 대기도했다. 이강은 환율 설명을 이어갔다.

"환율이 1달러에 2000원으로 치솟은 것도 간단히 말하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른 것이야. 국내에 달러가 거의 없으니 달러 값이 치솟은 거지. 반대로 한국 기업이 수출을 많이 해 국내에 달러가 풍부해지면 환율은 떨어지지. 수출이 잘 된다는 얘기는 그 나라 경제가 잘 돌아가고 튼튼하다는 증거지. 그래서 1달러에 1000원이 되면 원화가치는 2000원인 때와 비교할 때 배가 되는 거야. 해외에 나가 쇼핑을 하거나 원자재를 구입할 때 과거에 비해 적은 돈이 드는 것이니까. 환율이 2000원이면 10달러짜리 기념품을 살 때 2만원이 필요했지만 환율이 1000원이 되면 1만원이면 되거든."

이강은 결과적으로 원화도 다른 나라 통화와 치열한 경쟁을 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 싸움에서 이기면 점점 경화로 대접받게 되는 것이고. 강해진 원화는 국내에서 수입품을 살 때도 힘을 쓴다고 했다. 소왕이 귀를 쫑긋했다.

"원화가치가 높아지면 수입이 늘어난다고 했지. 같은 제품을 전에 비해 싸게 수입할 수 있기 때문이지. 그러면 국내에 있는 시민들도 외국 제품을 과거에 비해 싸게 사서 즐길 수 있게 되는 거야. 유학 간 자녀들에게 학비와 체재비를 보낼 때도 마찬가지지. 1년에 똑같이 5만 달러를 보낸다 해도 원화로 환산한 금액은 과거보다 줄어들기 때문이야. 다시 말해 같은 금액의 원화로 외국 제품이나 서비스(수업료)를 싸게 살 수 있게 된다는 얘기지."

"그렇다면 원화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좋은 일이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대신 수출기업들은 좀 힘들게 되지. 앞에서 LG전자의 모니터 수출을 예로 들었지. 1000원 하던 환율이 950원이 되면 LG전자는 수출가격이 6% 정도 오르게 되지. 수입하는 쪽에서는 그만큼 LG 모니터를 꺼리게 되고.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기존의 수출량을 유지하면 이익이 6%만큼 늘어나겠지. 그러나 이런 가격요인을 이기지 못하면 수출이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어."

이강은 이런 일은 현장에서 딱 한 번만 해보면 바로 이해가 되는데, 이론으로만 배우려니 좀 어려운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왕에게 좋은 머리를 가졌으니 혼자서 다시 한번 반추해 보면 원리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 머리도 식힐 겸 그 여자에게 한번 연락해 볼까?"소왕이 갑자기 그렇게 말했다. 이강은 순간 헷갈렸지만 그가 말하는 여자가 오수아씨라는 걸 금세 짐작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이 아는 여자는 그 여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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