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엔 험프리 보가트를 잊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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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수트 잘 입기 ②트렌치코트 ③셔츠와 넥타이 ④액세서리 ⑤캐주얼 ⑥베스트 드레서되기

햇살은 완연한 봄빛이로되 일교차가 심술을 부린다. 출근·등교길엔 바람결이 제법 매섭다. 옷입기가 가장 애매할 때다. 코듀로이 재킷은 아침·저녁으로는 어울리지만 햇볕 쨍쨍한 낮 시간에는 더워 보인다. 파스텔 톤의 얇은 니트는 봄빛에는 제격이지만 밤늦은 데이트 약속에는 낭패를 볼 가능성이 있다. 이럴 때 트렌치코트가 돋보인다.
트렌치(Trench)는 도랑·참호라는 뜻으로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병사가 참호 안에서 입었던 군용코트에서 유래한다. 애초 남성용으로 길고 넉넉한 박스형에 더블단추가 기본이었으나 점차 남녀구분 없이 입게 됐다. 가을날 낙엽길에 어울리는 트렌치코트가 봄 거리에 새로운 입을거리의'지존'으로 등극했다. 트렌치코트로 멋내기, 왕도는 없는 걸까?
트렌치 코트를 고를 때는 길이·색상·소재, 세 가지에 유의해야 한다. 낙엽을 다 쓸고 다닐 듯한 긴 트렌치코트는 가을에나 어울린다. 봄철엔 엉덩이를 살짝 덮을 정도로 짧아야 경쾌하다. 색상은 베이지 컬러를 고집하지 말자.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감우성이 즐겨 입던 화이트 컬러는 밝고 깔끔한 이미지를 풍겨 봄과 잘 어울린다. 깔끔하고 정돈된 스타일을 추구한다면 짙은 블루나 네이비 컬러도 나쁘지 않다. 큰 체크무늬도 컬러가 요란하지 않다면 괜찮다. 가장 중요한 것이 소재다. 봄철에는 빳빳한 개버딘 대신 얇은 면이나 시원한 마 소재가 각광받고 있다. 클래식보다는 로맨티시즘이 느껴지는 소재로 선택하라.
이번 봄 트렌치 코트로 멋을 낼 때는 세기의 명배우 험브리 보가트부터 잊어야 한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명장면은 '트렌치코트=보가트'로 관객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이는 '가을의 전설'일뿐이다. 더구나 키가 작고, 마른 체형이라면 더블 트렌치코트는 무거워 보인다. 싱글 스타일로, 벨트는 앞으로 꽉 채우지 말고 뒤로 가볍게 묶어 재킷처럼 걸치는 것이 한결 산뜻하다. 중절모·넥타이는 선택사양이다. 가벼운 면 티셔츠에 청바지와 스니커즈를 신고 '아저씨'보다는 '젋은 오빠'스타일의 캐주얼한 코디가 봄에 어울린다.
트렌치코트의 대명사 버버리, 심플하면서도 감각적인 에르메네질도 제냐 등 수입 브랜드부터 10만원대 국내 캐주얼 브랜드와 송지오·정욱준 등 디자이너 브랜드까지 다양한 트렌치코트가 나와 있다. 세일한다고 무턱대고 택하지 말고, 최소한 작년 가을에 나온 디자인인지 아닌지 살펴보고 구입하는 것이 좋다. 4월의 트렌치코트, 그 어깨위로 낭만이 햇살처럼 내려앉는다.

사진 제공=버버리

◇정윤기=패션 스타일리스트로 홍보대행사 '인트렌드'의 대표이다. 방송과 강단, 패션쇼 현장을 종횡무진하며 활동하고 있으며, 김희애·신애·김민희·손예진·차승원·천정명 등 톱스타들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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