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온KUFTA시대] 김현종, 청와대 다녀온 뒤 극적 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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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한·미 FTA 고위급 협상 대표(中)와 김종훈 수석대표(가운데 왼쪽)가 1일 저녁 사복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협상장인 서울 하얏트 호텔을 나서고 있다. 박종근 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48시간 더 늘어나면서 한.미 양측의 신경전은 더 치열해졌다. 상대가 최후의 '카드'를 언제 내놓을지 저울질하며 패 읽기에 골몰했다. 심리전과 정보전도 뜨거웠다.

미국 협상단은 첨단 장비를 동원해 도청장치를 검색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 측은 자동차와 농업 분야에서 최후 협상안을 미국에 던져 놓고 벼랑 끝 압박전술을 구사했다. 양측은 밤 11시 무렵 모든 분과 협상을 끝낸 뒤 발표문안 정리에도 밀고당기기를 계속했다.

◆ 긴박했던 청와대=노무현 대통령은 31일과 1일 공식 일정을 잡지 않았다. 청와대에서 협상 내용을 전달받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협상팀에 큰 줄기의 지침만 전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협상팀에 전권을 위임했다. 대통령이 협상에 깊이 관여할 경우 자칫 미국 측에 한국이 타결에 연연해 한다는 인상을 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협상에 참여한 정부 관계자는 물론 청와대 내부에도 함구령을 내렸다. 지난달 30일 밤 청와대에서 나온 '선 타결 후 조문화' 방침이 미국의 강경 입장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제기됐다는 지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윤승용 홍보수석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협상 진행상황 등에 대해 청와대가 언급하는 것은 협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청와대는 공식.비공식 언급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 치열한 심리전=미국 협상단은 수시로 첨단 장비를 가져와 회담장 주변에 도청장치가 있는지를 점검했다. 미국 측 협상단이 쓰는 휴대전화도 도청이 안 되는 전화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스티브 노턴 대변인은 한국인 통역을 고용해 한국 대표단의 발언을 일일이 점검하기도 했다. 노턴은 수시로 임시 기자실을 찾아 한국 쪽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온 게 있는지 캐묻기도 했다. 토요일자 조간신문 일부가 FTA 협상이 타결됐다며 오보를 내자 그 배경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협상 마감 시한을 놓고도 양측 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지난달 31일 새벽 김종훈 한국 수석대표는 "협상 시한은 한국시간 월요일(2일) 새벽 1시"라며 "이후 한국시간 월요일 오전 6시(미국시간 4월1일 오후 5시)까지 미국 측이 본국 의회에 협상결과를 통보하게 된다"고 밝혔다. 협상은 새벽 1시까지 해야 하지만 의회 통보가 6시까지 가능하므로 사실상 6시가 최종 협상 시한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미국 측은 협상 시한이 월요일 새벽 1시라고 못 박았다. USTR 노튼은 본지와 통화에서 "협상 시한도 1시이고 의회에 통보해야 하는 시간도 1시"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결국 양측 밀고당기기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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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박감 감도는 협상장=저녁 무렵이 되면서 협상장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일부 분과에서 조금씩 진전이 이뤄지기도 했다. 양측은 분과별로 팀장과 실무자가 만나 담판하는 '2+2' 방식으로 동시다발 협상을 벌였다. 실무선에서 진전이 이뤄지면 고위급 협상에서 이를 최종 조율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김종훈 수석대표가 7시30분쯤 협상장에서 청와대로 가 마지막 협상 내용을 보고했다. 그 직후 청와대에서 긴급 경제장관회의가 열렸다. 오후 11시30분쯤 김 본부장이 다시 협상장으로 돌아오면서 협상은 급진전했다. 자동차와 쇠고기 분야에서 사실상 합의안이 도출됐다. 그러나 자동차.농업 등 핵심 쟁점이 풀리자 막판에 섬유 협상이 다시 발목을 잡았다. 원사(原絲)의 국적까지 따지는 미국의 '얀 포워드' 규정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심야까지 이어졌다.

◆ 마지막 산고(産苦)=섬유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선 자정 무렵부터 발표 문안 작성에 들어갔다. 협상단 고위 관계자는 "협상은 사실상 끝났으나 최종 문안 작성 등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협상단 고위 관계자는 "협상 내용을 보면 단식 농성을 하는 의원들이 보기에도 우리 쪽에 매우 유리한 수준"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발표 문안 작업이 새벽까지 이어지는 와중에도 미국 의회로부터 최종 지침이 오지 않아 양측 대표단의 애를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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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종근 기자

◆ 국제수역(獸疫)사무국(OIE)=세계 160여 개 국이 가입한 동물.축산물 관련 국제기구. 광우병 쇠고기의 국제교역 기준을 정한다. 이 기준은 세계무역기구(WTO) 기준으로 준용돼 타당한 근거 없이 규약을 어기면 WTO에 제소당할 수 있다. 한국도 OIE 회원국이다. 광우병은 3등급으로 위험을 판정하는데 1, 2등급을 받은 나라의 쇠고기는 뇌.척수 등 광우병 위험 부위만 제외하고 부위에 상관없이 수출할 수 있다. 미국은 5월 말 2등급 판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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