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붐(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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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77년 7월13일 밤 9시34분,미국 최대의 도시 뉴욕이 갑자기 암흑속에 휩싸였다. 뉴욕 교외의 핵발전소에 벼락이 떨어져 불가항력으로 정전이 된 것인데,12시간이나 계속된 이 정전사고로 인구 1천만명이 넘는 대도시 뉴욕은 무정부상태를 방불케 하는 일대 혼란이 야기됐다. 곳곳에서 약탈·폭력이 난무해 78명의 경찰관이 부상하는 사태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78년 5월,뉴요커들의 뇌리속에서 그 악몽도 차츰 잊혀져갈 무렵 뉴욕의 정전사고는 다시금 세계의 화제로 등장했다.
뉴욕의 출산율이 갑자기 높아졌는데 그 이유는 10개월전의 정전사고 때문이라는 것이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아무것도 할일이 없었던 사람들이 「일제히」 성관계를 가졌다는 얘기다. 이때 태어난 아기들을 이름하여 「블랙 아웃 베이비」라 불렀다.
한때 「바캉스 베이비」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사람들을 들뜨게 하기 쉬운 한여름 바닷가등 휴양지에서 남녀의 탈선이 쉽사리 이루어져 원하지 않는 아기들이 태어나는 경우를 일컫는다.
우리사회에서는 오래전부터 우스갯소리처럼 「철로변에 사는 사람들은 자녀가 많다」는 말이 있어 왔다. 증기기관차가 날카로운 기적소리를 울리며 달리던 무렵,한밤중 기적소리에 놀라 깨어난 부부들은 어김없이 관계를 갖게 되니까 자녀가 많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출산율은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상황이나 사회상황과 무관하지 않을성 싶다.
최근 미국에서는 「걸프전 베이비」가 붐을 이루고 있다 한다. 작년 1월17일 발발한 걸프전에는 50만명 이상의 미군이 참전했는데 그들이 3월부터 본격적인 철수를 시작했으므로 지금이 꼭 10개월이라는 것.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남편과 부인이 재회의 기쁨을 누린 결실이 착착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여군이나 여성군속들이 이용하는 산부인과병원들이 새해에 들어서면서 임산부들로 붐비는가 하면,최근 미 국방부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텍사스주와 켄터키주의 미군기지 관련 출산율이 지난해보다 무려 두배까지 증가했다고 한다.
전쟁이 인간사회에 미치는 영향의 한 측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회상황과 출산율이 무관하지 않다면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은 출산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다. 혹 「에이,세상 돌아가는 것 모두가 꼴불견인데 사랑이나 나누지」라고 생각하는 부부들은 없을까.<정규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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