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데스 노트'

중앙일보

입력

노무현 대통령이 연설 중에 손가락으로 '우두둑' 소리를 내고, 화장도 한다. 잠시 뒤 '데스노트'를 펴고 몇몇 언론사의 이름을 적는다. 올 1월 23일 방송된 대통령 신년연설에 일부화면을 합성한 동영상 '노무현 데스노트' 내용이다.

이 동영상은 블로그 서비스업체 '미디어몹(Mediamob)' 방송팀이 만든 '1월 26일 헤딩라인뉴스'의 한 코너. '헤딩라인뉴스'는 한 주에 있었던 시사 현안을 풍자하는 동영상 형식의 뉴스. 2005년 3월까지 KBS 시사투나잇에 방영됐고 현재는 미디어몹 사이트(www.mediamob.co.kr)에서만 서비스되고 있다. '목타는 탈당' 등이 '헤딩라인뉴스'가 낳은 히트작이다.

'데스노트'(Death Note)는 오바 츠쿠미 원작의 일본만화. 고교생 라이토가 사람의 이름을 '데스노트'에 쓰면 사신(死神)이 그 사람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이야기다. 영화로도 나와 올 초 국내에 개봉됐다.

네티즌은 이 동영상을 보고 "어떻게 저렇게 합성했느냐"며 절묘한 기술에 감탄하고 있다. 이름이 적히면 죽음에 이르게 되는 '데스노트'를 소재로 한 것에 대해선 "일부 신문사 망해라는 대통령의 연설 의도를 직설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반응이다. 반면 일부 네티즌은 "대통령을 너무 희화화한다"며 불편한 심정을 비치기도 했다.

'노무현 데스노트'는 인터넷에서 대통령을 풍자하는 '노무현 놀이'의 일종이다. '노무현 놀이'는 노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이 투표결과로 드러난 지난해 5.31 선거 이후 시작됐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댓글달기가 인터넷을 휩쓴 것. 심지어 노 대통령과 아무 상관없는 기사에도 '노무현 탓'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이승엽이 홈런을 못 쳐도 '노무현 탓'이라는 댓글이 올라오는 식이다.

올 1월엔 노 대통령이 일본에 동해를 '평화해'로 부르자고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연예인 신상 기사에까지 "노무현 찍어서 죄송하다"는 댓글이 빗발쳤다.

동영상까지 등장한 '노무현 놀이'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미디어몹 이승철 대표는 "앞으로 패러디 콘텐트나 풍자성 댓글문화로 대표되는 '야유'를 인정해주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황용석 교수는 "풍자성 UCC(사용자제작콘텐트)가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냉소주의나 숨어서 얘기하기 좋아하는 문화가 콘텐트에 반영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선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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