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리더십 새 모델 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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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경영 리더십의 새 지평을 연 역사적인 사건'.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대구시가 유치하자 전문가들은 "지방자치단체의 새로운 역량을 보여준 일대 사건"이라 말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도 될까 말까 한 세계적 스포츠 행사를 지자체가 자력으로 따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김범일 대구시장과 유종하 대구유치위원회 위원장, 박정기 IAAF 집행이사의 트로이카가 있었다. 강력한 추진력(김 시장)과 탁월한 외교력(유 위원장), 핵심을 파고든 전문성(박 이사)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심익섭(행정학) 동국대 교수는 "대구가 홀로 큰 대회를 유치한 것은 글로컬라이제이션(Globalization과 Localization의 합성어.지방의 세계화란 뜻)의 표본"이라며 "시민의식의 국제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승대(사회학) 영남대 교수는 "지역 지도자들이 지역 발전을 위해 어떤 일을 기획하고, 어떻게 추진해야 하는지 보여준 좋은 사례"라며 새로운 지자체 경영 리더십의 모델과 유형을 제시했다.

◆ "우리 힘으로 하자"=2005년 6월 유치위원회가 발족했다. 하지만 시민 대부분은 "그게 무슨 대회냐"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9일간 연인원 65억 명이 TV로 시청(2005년 헬싱키 대회)한 세계 3대 스포츠 행사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부에 인력과 예산, 후원사 선정을 도와 달라고 수차례 건의했지만 "단일 종목이어서 정부가 나서기 어렵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결국 '우리 힘으로 해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 후원사 유치도 스스로=후원사 유치는 대구시가 풀지 못한 최대 난제였다. 그런데 27일 최종 프레젠테이션 때 김 시장은 대회기간에 규정대로 선수단에 숙식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취재진에게는 하루 100달러의 실비(통상 170달러 정도)로 숙식을 해결할 수 있게 하겠다고 제안했다.

또 IAAF에 150만 달러의 기부금을 약속했고, 국내 기업을 후원사로 선정할 것임을 확약했다. 김 시장은 케냐 몸바사로 떠나는 23일 오전 구미까지 가서 삼성전자 연구개발기술센터 착공식에 참석한 뒤 삼성전자 측이 제공한 헬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가는 강행군을 했다. 김 시장이 직접 뛰었고, 후원사는 삼성임을 시사한 대목이다.

대구=홍권삼 기자

# 김범일 대구시장

김 시장은 정부의 지원도 없고, 스폰서도 구하지 못해 의기소침한 대구시 관계자와 유치위 관계자들을 독려하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대구의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시민들의 동참을 촉구했다. 육상 열기를 지피기 위해 대구 국제육상대회를 열고 '세계육상선수권을 직접 관람하겠다'는 서명운동을 펼쳐 80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냈다.

# 유종하 유치위원장

외무부 장관 출신인 유 위원장은 지방 도시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외교를 전담했다. 유 위원장은 능숙한 외국어와 대인 관계로 대구의 유치 타당성을 설득하고 다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투표권을 가진 28명의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집행이사 중 3~4명을 빼고는 모두 직접 만났다. 대구에서는 그의 노력을 '지방 외교의 승리'로 평가하고 있다.

# 박정기 IAAF 이사

박 이사는 대구 유치의 숨은 공로자다. 대한육상연맹 회장을 역임한 그는 16년째 IAAF 집행이사 활동을 하고 있다. 육상 행정에 대한 탁월한 전문성과 누구를 만나도 금방 친해지는 친화력으로 투표권을 가진 집행이사들을 하나하나 설득했다. 투표한 25명 중 무려 20명이 대구를 지지했다는 사실을 통해 박 이사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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