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패션계 역사 공백 채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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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 노라노(79.본명 노명자)씨가 쓴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의 열성팬인 이철영씨가 보낸 편지의 일부다. 지난해 12월 7일 시작된 그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나의 선택, 나의 패션' 연재가 27일 88회로 마무리됐다.

한 세대를 풍미한 여성복 디자이너의 치열한 삶은 1960년대와 70년대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현재 대한민국의 기초를 다진 '원로'들의 존재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독일 명품 MCM을 인수해 성공을 거두고 있는 성주그룹 김성주(51) 회장은 "우리에게도 노 선생처럼 패션 중심지 뉴욕에서 성공한 디자이너가 있었다는 사실은 젊은이들에게, 후세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귀중한 일이고 이런 체험기를 많이 알리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평했다.

전 이화여대 교수 김호순(75)씨는 "노 선생의 인생 자체도 대단하지만 중앙일보 연재물은 그가 우리나라 패션과 무대의상에 관해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귀중한 참고자료로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근대 복식에 관해 명확한 사료들이 남아있지 않아 아쉬웠는데 이번 연재가 그런 공백을 채워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패션계의 전설'이었던 노 선생의 입을 통해 직접 한국 근대 패션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한 미술.디자인 평론가 임근준(35)씨는 "한 명의 독립적인 여성이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결코 좌절하지 않고 일가를 이뤘으니 젊은이들이 본받을 만하다"고 했다.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김(74)씨는 "패션계에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으로 더욱 왕성한 활동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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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조정자(ID:eq2003)씨는 본지 인터넷 신문인 조인스닷컴에 "요즘 신문이나 뉴스를 접하면 놀랍고 가슴아프고 한숨이 나는 얘기만 보여주는데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코너는 한 사람의 정직하고 성실한 삶의 이야기로 아침을 개운하게 맞도록 도와줬다"는 소감을 올렸다. 82회분 내용에 소개됐던 노씨의 경기여고 후배인 진경희씨는 e-메일을 보내 "지난 석 달 언니 글을 읽는 즐거움에 살았는데…"라며 아쉬움을 표하고 "대만 친구는 중국어판이 있었으면 하고, 미국인 친구는 영어판을 원한다"고 노씨가 쓴 '남기고…'의 인기를 전했다.

연재가 시작된 직후인 지난해 12월 말에는 미국의 UC버클리대에서 번역 출판 제의도 있었다. 버클리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김경년 교수는 노씨에게 e-메일을 보내 영역 출간을 제의했고, 현재 논의 중이다.

노씨와 세대도, 관심사도, 사는 지역도 다른 독자들의 이 같은 성원에 힘입어 노라노씨는 지면관계상 싣지 못한 분량을 추가해 곧 책을 출간할 계획이다.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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