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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IT 한국' 발목잡는 부실 SW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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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D보험사는 지난해 말 수천여 명의 고객에게 약정된 보험료보다 더 많은 돈을 청구했다. 이 회사 금융전산망에 실린 소프트웨어(SW)가 말썽을 부려 빚어진 일이다. D사는 이 사실을 감춘 채 30여억원을 들여 일주일 동안 전산시스템을 샅샅이 조사했다. 그러나 SW 에러를 끝내 찾지 못했다. 이 회사 한 직원은 "회사 이미지가 떨어질까봐 선의의 피해자에게 몰래 보상해 입막음을 했지만 언제든지 이런 일이 재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S정보기기는 부실 SW의 후폭풍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이 회사는 지금까지 휴대용 정보기기를 800억원어치 팔았지만 제품에 쓰인 SW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팔린 제품 대부분이 반품됐다.

우리나라 경제현장 곳곳에 '부실 SW' 비상이 걸렸다. 부실 SW들이 정보기기뿐 아니라 자동차.항공우주.금융.유통 등 전 산업에 쓰이고 있어 이로 인해 국가 경쟁력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9일 서울 도곡동 한국IBM 빌딩에서 열린 국제SW 세미나에 참석한 국내외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국산 SW제품을 '시한폭탄'으로 규정했다. 에릭 반 비넨달 국제SW테스터자격증협회(ISTQB) 부의장은 "한국에서 검증 안 된 SW들이 널리 쓰이고 있어 머지않아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외에선 이미 국산 SW에 대한 경계령이 내려진 상태다.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이 2005년 말 일본에 진출한 국내 SW업체(124개 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곳 중 1곳이 현지시장에서 퇴출됐다. 제품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유영민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은 "부실 소프트웨어는 해외시장에서 팔리는 국산 완제품의 신뢰도마저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국산 SW가 왜 이 지경이 됐을까. SW업계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SW업체 간 납품가격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부실 제품이 양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통신부가 최근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SW시장을 조사한 결과 단말기 회사들이 외국산 SW에는 로열티까지 주면서 구입하지만 국산 제품은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통부의 임차식 SW진흥단장은 "개발비용을 줄이려고 제대로 테스트를 하지 않는 SW 업체가 숱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SW가 나올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개발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정보통신부는 국내 SW 개발인력은 매년 1000명 이상씩 모자랄 것으로 추정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테스트 인력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고 이로 인해 검증되지 않은 부실 SW가 활개를 치게 된 것이다.

비넨달 부의장은 "마이크로소프트 등 선진 SW 회사들은 제품 개발비에서 테스트 비중을 60%까지 둔다"며 테스트 인력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선진국에는 국제 공인 고급 테스트자격증 소지자가 많지만 한국엔 단 한 명도 없다. 이화여대 최병주(컴퓨터학과) 교수는 "SW 인력 육성을 서두르고, 공공기관과 대기업부터 SW를 적정한 가격에 사야 부실 SW가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원호.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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