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아공 축구 꿈나무 키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임흥세씨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처음 축구팀을 만든 임푸멜와노 초등학교 학생들이 ‘임흥세 축구교실’에 참가해 기본기를 배우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흑백 갈등이 심각하고, 에이즈.결핵.미혼모 등 사회 문제 역시 간단치 않습니다. 축구를 통해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축구스타 홍명보를 비롯한 14명의 국가대표 선수를 키워낸 왕년의 '명조련사'가 전 재산을 털어 2010년 월드컵 개최국인 남아공에 어린이 축구팀을 만들고 있다.

주인공은 서울 동대문운동장 인근에서 '임 스포츠'라는 스포츠용품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임흥세(51.사진)씨. 그는 지난달 남아공으로 날아가 케이프타운의 흑인 초등학교 두 곳에 축구팀을 만들어 놓고 지난주 귀국했다. 임씨는 매장을 처분하고 8월께 남아공으로 이민을 떠날 예정이다. 시민권이 나오기 전까지 현지에서 활동하기 위해 남아공 정부가 외국인 자원봉사자에게 발급하는 3년짜리 비자도 받아 놓았다.

임씨는 케이프타운을 중심으로 초등학교 축구팀을 계속 만들고, 이들이 훈련할 수 있는 축구 센터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2010년까지는 32개 팀을 만들어 이들끼리 '미니 월드컵'을 연다는 목표도 세웠다.

그가 최초로 축구팀을 만든 임푸멜와노 초등학교에서는 재학생 1500명 전원이 2주간 열린 '임흥세 축구교실'에 참가했고, 이중 50명이 선수로 선발됐다. 축구공을 구하기 힘들어 나무열매든 플라스틱이든 둥근 것만 보면 차고 놀던 아이들은 '진짜' 축구공을 차면서 너무 즐거워 했다고 한다.

임씨는 "남아공 아이들은 유연성이 뛰어나고 공 다루는 재주도 뛰어난데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했어요. 체계적으로 가르치면 드로그바(코트디부아르).아데바요르(토고)처럼 세계적인 선수가 나올 수 있을 겁니다"라고 했다.

서울 광장동 광현교회 장로이기도 한 임씨는 1980년대 초반부터 아프리카 축구 선교를 꿈꿔왔다. 월드컵이 열리는 남아공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그는 현지 선교사를 통해 올 초 남아공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남아공 정부는 "2002 월드컵 4강 국가에서 실력 있는 지도자가 온다면 대환영"이라며 적극 지원을 약속했다. 임씨는 이 일에 전 재산을 쏟아붓기로 했다. 32개 팀을 운영하려면 매년 1억 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겠지만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임씨는 "내가 가진 축구 지식과 재산을 바탕으로 어린이 수백 명이 꿈과 목표를 갖게 된다면 너무나 행복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한영고와 인천체대에서 미드필더로 선수 생활을 한 임씨는 대학 졸업 후 체육교사를 하며 축구 선수들을 지도했다. 성수중에서 '야생마' 김주성(대한축구협회 국제부장)을, 광희중에서는 홍명보(축구대표팀 코치)를 조련했다.

홍 코치는 "중학 시절 지겹게 기본기 훈련을 시킨 임흥세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 지도자이고, 국가대표 홍명보는 사실 그때 만들어졌다"고 입버릇 처럼 말해왔다.

정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