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싸게 더 싸게 '한국 포위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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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TSMC의 300mm 웨이퍼 공장 전경.[TSMC 홈페이지]

대만의 중부과학공업지구. 이 지역이 최근 하이테크 제조업의 집적지로 세계 반도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이 지역에 대거 입주해 반도체 클러스터(산업 집적지)를 형성하며, 일본 첨단산업의 전략기지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전기와 히타치가 공동으로 만든 엘피다(D램 점유율 세계 5위)가 대만 현지 기업 PSC와 손잡고 500억 대만달러(약 1조5000억원)를 투자해 D램 공장을 세웠다. 이 공장은 4월부터 가동된다. 엘피다의 사카모토 유키오 사장은 "대만은 세계에서 가장 값싼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곳이다. (품질을 유지하면서) 검사공정도 없앨 정도로 생산효율이 높다"며 대만 진출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엘피다는 올해 말까지 5000억 엔(약 5조원)을 들여 일본 히로시마에 세계 최대 D램 공장을 완성할 예정이다. 엘피다의 이 같은 움직임은 물론 세계 1, 2위를 차지하고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뛰어넘기 위한 것이다. 중부지구가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대만 고속철(신칸선) 때문이다. 올해 초 타이베이와 가오슝을 잇는 신칸선(약 335㎞)이 개통돼 대만 남북을 1시간30분 거리로 좁혀놨다. 고속도로나 열차로는 5시간 정도 걸린다. 이동통신 업체 파이스톤의 통신망 엔지니어인 오 티노는 "(일본 기술로 만든) 신칸선과 공업지구개발로 대만도 곧 소득 2만 달러가 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대만과 일본 업체들이 스크럼을 짜고 한국 반도체 업계를 공격하고 있는 형국이다.

◆일본은 왜 대만을 택했나=일본 업체의 종착역은 중국 시장이다. 그러나 중국에 집적 진출하는 것보다 대만을 교두보로 삼아 나가는 게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보고 대만을 택했다.

대만의 경우 반도체공장을 세울 경우 법인세를 5년간 면제받고, 최첨단 기술에 대해 5년간 세제 혜택도 받는다. 대만 정부는 입주에 필요한 각종 서류신청과 컨설팅을 원스톱 서비스한다. 일본 업체가 중부지구를 겨냥하는 것은 인재를 확보하거나 기술을 교류하기 쉽기 때문이다.

대만 정밀기기산업의 70%가 몰려 있는 중부는 반도체 메이커인 TSMC로 대표되는 신주지구와 액정패널회사 기미(奇美)전자가 클러스터를 이루는 남부지구의 중간에 있다.

◆대만의 노림수는=일본 기업을 끌어들임으로써 대만은 반도체 주변기술과 제품을 일본에 수출할 기회를 얻는다. 대만 반도체 설계회사인 패러데이 테크놀러지는 일본 오키전기에 첨단 대규모 집적회로(LSI) 제조에 필요한 설계기술을 팔기로 했다. 이 기술은 90 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 이하의 반도체 개발에 적용된다.

또 야큐러스 사이어티픽은 반도체 칩과 배선판 등을 접속하는 데 필요한 미세 입자형 땜납을 수출할 예정이다. 이 회사는 앞으로 3년 후 일본 시장에서 점유율 50%를 차지하는 것이 목표다. 대만은 차세대 반도체 개발 과정에서 주변기술과 제품 특화에 승부를 걸고 있다. 일본이 대만과 손잡는 사이 인텔은 직접 중국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대만과 중국의 교역량이 점차 늘고 있다"며 "대만.일본의 협력에다 중국까지 가세할 경우 세계 최강 D램 생산업체인 한국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타이베이=곽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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