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바둑 산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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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SBS배세계바둑최강전」이 바둑계의 큰 화제가 되고 있다. 기전 규모도 크고 방식도 특이하며 우리팀의 전적이 만족할만 하기 때문이다.
한국·중국·일본의 3개국이 각5명씩 선수를 출전시켜 「줄 씨름」으로 대전, 우승팀을 가리는 방식이 흥미롭다. 이 방식은 중·일슈퍼대항전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으나 이번에는 2개국 아닌 3개국이어서 더욱 묘미가 있다.
먼저 참가 기사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한국팀-조훈현 9단·서봉수 9단·서능욱 9단·유창혁5단·이창호 5단 ▲중국팀-굉위평 9단·마효춘 9단·유소광 9단·조대원 9단·유빈 9단 ▲일본팀-임해봉 9단·무궁정수 9 단·가등정부 9단·의전기기 8단·소송영수 7단.
과연 세계 정상급 초호화 멤버들이다.
조를 가르니 한국팀 A조, 일본팀 B조, 중국팀 C조. 한국팀의 선봉장은 기성 유창혁 5단, 일본의 소송영수, 중국의 벨대원, 일본의 의전기기를 닥치는대로 무찔러 일·중팀의 기를 꺾으니 덩달아 한국팀의 용병술이 돋보이기도 했다.
특히 소송영수·의전기기는 일본바둑계의 「떠오르는 태양」과 같은 존재들이어서 일본팀은 출발부터 극심한 타격을 입고 말았다.
유창혁의 연승행진이 어디까지 이어질는지가 큰 흥미거리였으나 중국팀의 2번타자 유빈에게 압도적으로 우세하던 판을 후퇴와 실수를 거듭한 끝에 반집차로 역전패 당함으로써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유창혁의 전공은 그의 이름처럼 혁혁했다.
중국팀의 활약도 만만치 않았다. 유빈은 여세를 휘몰아 일본팀의 최강 무궁정수를 꺾어 파란을 일으켰다.
무궁정수는 원래 가등정부 다음으로 둘 예정이었으나 굳게 믿었던 소송영수·의전기기가 단칼에 끝나는 바람에 일본에서 대국스케줄이 있었던 가등정부대신 핀치히터로 등장해야만 했던것. 유창혁의 위세에 일본팀은 작전에 큰 차질을 빚었다는 얘기다.
한국팀의 2번타자는 서능욱 9단. 그의 상대인 유빈은 거함 무궁정수를 격침시키느라 탈진했음인지 실수연발로 자멸했고 서능욱은 「대마킬러」로 유명한 일본의 가등정부에게 거꾸로 대마를 몽땅 포획하고 나서 갑자기 난조에 빠져 어이없이 역전패.
그러나 가등정부도 중국의 유소광에게 다 잡았던 대마를 놓치고 무너짐으로써 일본팀은 중국인 기사 림해봉 1명만 남았으며 한국팀과 중국팀은 이창호·서봉수·서훈현, 유소광·마효춘·오위평의 3명씩 남겨놓은 상태에서 내년 2월초에 다시 맞붙어 우승국을 가리게 된다. 현재로서는 한·중 연합군의 협공에 일본군이 초토화된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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