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납치”협박 공갈단 수법/IQ 1백30 주범이 범죄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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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딸둔 금융계인사 물색 “인신매매”겁줘/경찰사칭 동사무소서 가족관계 등 확인/여관투숙 남녀 도청 불륜폭로 협박까지
은행·증권회사 지점장들을 상대로 자녀를 납치하겠다고 협박,금품을 요구하다 27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붙잡힌 20대 3인조는 협박횟수·범행수법 등 면에서 근래에 보기드문 대형 공갈단이었다.
은행에 9년동안 근무했던 주범 권재윤씨(27) 등 3명은 은행·증권회사의 지점장과 여관투숙객·백화점 등 돈이 될만한 곳이면 가리지 않고 협박·공갈을 일삼은게 특징.
이들이 실제로 협박한 대상자가 40여명에 이르고 다른 30여명은 협박을 위해 가족사항 등을 면밀히 파악해 놓고 있을 정도였다.
범인들은 「자녀 납치,성폭행」「불륜관계 폭로」등 파렴치한 범행수법을 사용해 놓고도 경찰에서는 『장난삼아 해본 일인데 우리가 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 법석이냐』고 능청을 떨기도 했다.
◇사건준비=범인들은 10월초부터 한달동안을 범행을 위한 사전준비 기간으로 잡아 치밀한 범행계획 수립과 함께 대상을 찾아 뒷조사했다.
특히 지능지수가 1백30이나 된다는 주범 권씨가 모든 범행계획을 구상했다.
이들은 최근 부녀자 납치폭행·인신매매 사건이 잇따르고 시민들에게 이에 대한 공포감이 만연되자 자녀 납치협박이 효과가 클 것으로 판단,「딸을 둔 금융계 인사」로 범행의 초점을 맞췄다.
이들은 시중은행·증권회사에 전화를 걸어 『군부대 장교인데 연하장을 보내려고 하니 지점장의 성명·전화번호·주소를 알려달라』고 한뒤 다시 동사무소에는 『경찰인데 수사에 필요하다』고해 가족관계를 파악했다.
실제로 이들은 머리를 짧게 깎고 신분증을 위조해 다니며 장교행세를 했다.
이들은 또 주범 권씨의 엑셀승용차를 타고다니며 여관 앞에 대기하고 있다 대낮에 투숙하는 남녀의 차량번호를 추적해 주소를 알아내는 수법을 썼다.
특히 이들은 여관방 남녀의 대화내용을 녹음하기 위해 주범 권씨가 녹음기·마이크 등을 연결,도청기를 직접 제작했고 서로 신속히 연락을 취하기 위해 무선호출기·무전기까지 구입했다.
그밖에 연말에 은행을 털기위해 서울시내 은행 1백50여곳을 답사,경보장치·방범순찰 상태·내부약도 등을 파악해 놓고 있었다.
◇협박=사전준비를 완벽히 갖춘 이들은 11월초부터 우선 걸려든 여관투숙객에게 전화를 걸어 『불륜관계를 목격했다』『녹음테이프를 가족들에게 들려주겠다』고 협박했다.
범인들은 20대 여자와 함께 투숙했던 허모씨(53·사업)에게서는 3백만원을 뜯어냈으나 여관투숙객에 대한 협박이 성과가 신통치않자 방향을 바꿔 백화점 협박에 착수했다.
지난달 15일 서울 서초동 S백화점에 2천만원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시중 뱀탕 집에서 꽃뱀 여섯마리를 사 백화점 비상계단에 풀어놓았다.
이들은 「뱀소동」이 신문·방송에 크게 보도되자 더 이상 협박을 포기하고 12월부터 은행·증권회사 지점장 협박에 들어갔다.
범인들은 은행지점장 5명·증권회사 지점장 5명 등 모두 10명의 집에 전화를 걸어 『증권하다 망한 사람인데 돈을 내놓지 않으면 가족을 몰살시키겠다』『딸이 이쁘던데 나에게 달라』『돈을 내놓지 않으면 딸을 납치,성폭행 하겠다』고 협박했다.
이로인해 상당수 지점장들이 딸을 외출시키지 않는 등 불안에 떨었으나 실제로 돈을 받아내는데는 실패했고 돈을 주겠다는 경찰의 유인작전에 말려들어 모두 검거됐다.
◇범인주변=주범 권씨는 경남 M상고를 졸업한뒤 83년부터 은행에 근무해오다 지난 7월 퇴직,차량도난방지기 판매업을 했으며 10월 범행을 계획하면서 문을 닫았다.
권씨는 특히 『크게 돈에 쪼들리는 상태는 아니며 목돈을 만지고 싶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태연히 말해 수사관들을 놀라게 했다.
한편 범인 박두규씨(26) 등 2명은 권씨와 고향 친구사이로 생활고에 시달려오다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졌다.<김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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