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계 평화에 주도적 역할" 베를린 선언 채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앙겔라 메르켈(앞줄 가운데) 독일 총리를 비롯한 EU 27개국 정상이 25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이날 베를린에서는 유럽 통합의 시발점이 된 로마조약 체결 50주년 기념행사가 성대하게 치러졌다.[베를린 로이터=뉴시스]

유럽이 한솥밥 식구가 된 지 25일로 반세기를 맞았다. 50년 전 로마조약으로 경제 통합의 첫 단추를 끼운 유럽은 이제 정치.사회.문화 면에서도 하나 되는 속도를 높여 가고 있다. 27개 회원국 4억8800만 명의 인구를 거느린 유럽연합(EU)은 세계 총생산의 21%를 차지하는 최대 경제블록으로 떠올랐다. EU 정상들은 25일 의장국인 독일 베를린에 모여 통합 50주년을 기념했다.

베를린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 앞 광장은 25일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이곳에서 열린 대규모 야외 음악 공연에는 이탈리아 록가수 지아나 나니니, 영국 가수 조 카커, 독일 록밴드 MAI 등 유럽의 스타들이 대거 참석했다. 유럽연합(EU) 27개국에서 온 거리 악사들도 다양한 음악을 연주했다. 벨기에의 와플에서부터 그리스의 수블라키(꼬치구이)에 이르기까지 온갖 전통음식이 한자리에 모인 임시 장터도 열렸다.

동베를린 중심가를 가로지르는 운터덴린덴 거리 한복판은 50년에 걸친 유럽 통합의 발자취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유럽 통합의 역사적인 시발점이 된 로마조약 체결 50주년을 기념하는 '유럽 축제'의 현장이다.

이날 유럽의 수도로 불리는 벨기에 브뤼셀과 50년 전 유럽 통합 조약이 처음 체결된 이탈리아 로마, EU를 탄생시킨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흐트 등 유럽 전역에서도 심포지엄과 콘서트, 전시회 등 각종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졌다.


그래픽 크게보기

◆ 베를린 선언 발표=EU 순회 의장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27개 회원국 정상과 한스 게르트 푀터링 유럽의회 의장,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은 24일부터 이틀간 베를린에 모여 정상회담을 열었다.

축제 무드가 절정에 이른 25일 EU 정상들은 '독일 역사 박물관'에서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베를린 선언'을 발표했다. 메르켈 총리가 문안 작성을 주도한 '베를린 선언'은 유럽 통합의 과거 성과를 되새겨보고 앞으로의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2쪽 분량의 선언문은 우선 유럽 공동시장과 공동 화폐인 유로화 도입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EU가 세계 평화와 자유를 증진하기 위한 주도적 역할을 계속할 것임을 천명했다. 에너지 문제, 기후변화 등 전 지구적인 도전에 대해서도 EU가 앞장서 해결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베를린 선언문에는 메르켈 총리와 푀터링 의장, 바호주 집행위원장만이 서명했다. 같이 서명하기로 돼 있던 나머지 국가 정상들은 뒤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기만 했다. 내용을 둘러싸고 회원국 간 입장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일부 쟁점은 우회적 타협=선언문이 나오기까지는 적잖은 산통이 따랐다. 핵심 쟁점의 하나는 EU 헌법. 독일 등 EU 헌법안을 비준한 국가들은 헌법 부활의 의지를 담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국민투표에서 헌법안을 부결했던 프랑스.네덜란드 등은 이견이 있는 헌법 문제를 선언문에 넣어서는 안 된다며 맞섰다.

메르켈 총리는 25일 연설에서 "EU 시민을 위해 유럽의회 선거가 실시되는 2009년까지 EU 헌법 조약을 체결해야 한다"며 "실패한다면 역사적인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밖에 메르켈 총리는 선언문에 기독교 전통을 반드시 담아야 한다는 폴란드, 사용 중인 파운드화를 의식해 유로화 도입 성과를 강조하지 말자는 영국 등 개별 국가의 주장을 조율하는데도 진땀을 흘렸다.

AP통신 등 외신은 "선언문에서 회원국 사이에 논란이 일었던 일부 쟁점 사안의 경우 직접 거명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표명하는 방식으로 타협을 봤다"며 "미묘한 현안인 EU 헌법과 확장이란 문구는 아예 빠져 있다"고 꼬집었다.

◆ 미래에 대한 엇갈린 시각=떠들썩한 축하 행사에도 불구하고 EU의 앞날을 바라보는 현지 언론의 시각은 엇갈린다. 영국의 시각은 차갑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유럽의 장래에 관해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파스칼 라미 EU 집행위원의 기고문을 통해 "유럽 국가들 간의 타협과 화해가 어렵다는 점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독일 언론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일간 디벨트는 "유럽이 주어진 기회를 활용했다"는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의 EU 통합 예찬론을 전면에 크게 싣고 논평에서 "베를린 선언이 나오게 된 것은 유럽의 행운"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은 24일 관저인 베를린 벨뷔궁에 모인 유럽 정상들에게 "EU가 단지 경제적 목적만 추구하는 단체라는 비판이 있다"고 지적하곤 "앞으로 유럽 주민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