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별 왕자의 경제이야기] (22) 1944년 7월 31일 꽃이 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안데스 산맥을 넘다

"자, 오늘 수업의 주제는 경제가 아니라 생텍쥐페리가 되겠습니다. 그럼 두 분, 어서 시작하시죠."소왕은 이렇게 너스레를 떨며 색다른 수업을 재촉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오수아라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며 이강이 먼저 바톤을 받았다.

"그는 21살 때 입대해 스트라스부르 공군부대에 지상 근무병으로 일하다 연말에 카사블랑카로 전속됐죠. 거기서 민간 항공사 자격증을 취득해 공군 사관후보생으로 선발됐고, 다음해 정식으로 군사비행기 조정 자격증까지 땄지요. 제대 후 파리로 돌아왔으나 이렇다할 직장을 찾지 못했다는군요. 그래서 창작에 몰두했는데, 그 즈음 앙드레 지드, 장 프레보 등 당대를 주름잡던 문인들과 만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1926년 마침내 첫 작품 '비행사'를 발표했지요."

이번엔 오수아씨가 이어받았다."생텍쥐페리는 첫 소설을 낸 뒤 에어프랑스의 전신인 라테코에르 항공사에 취직해 1년 반 정도 근무했지요. 이때 그는 다카르와 카사블랑카 사이를 왕복하는 우편물 수송 비행기를 조종했는데, 이때 얻은 경험을 토대로 1929년에'남방 우편기'를 썼지요. 유럽 항공사들은 그 즈음 남미 진출에 나서기 시작했는데, 생텍쥐페리가 바로 이 프로젝트에 투입됐대요. 그는 목숨을 걸고 안데스산맥을 넘어 칠레의 최남단 푼타 아레나스까지 항로를 개척하는 성과를 올렸지요. 그때의 숨가쁜 모험과 조종사들끼리의 깊은 연대감이 1931년 발표된 '야간 비행'이란 작품에 녹아있지요."그녀는 역시 고수였다.

이강이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야간비행'으로 그는 행동주의 문학가로 자리매김하면서 앙드레 지드의 격찬 속에 페미나 문학상을 수상했죠. 그래서 유명해졌지만 경제적인 문제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다고 해요. 그때나 지금이나 작가들은 대부분 가난한가 봐요."

"그가 항공사에 취직했던 건 꼭 돈 때문만은 아니라고 봐요. 그는 늘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 있었고, 그 일에서 좋은 글감을 건져 올렸으니 어쩌면 문학을 위해 조종사란 직업을 택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소설 같은 삶

그녀는 소왕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남미 생활을 접고 파리로 돌아온 그는 18살 아래인 엘살바도르 여자와 결혼했지요. 그러나 그의 결혼생활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대요. 7년간 같이 살다 5년간 별거를 했지만 정식 이혼은 하지 않았죠."

이강은 1935년 12월 27일 생텍쥐페리가 15만 프랑의 상금이 걸린 비행대회에 출전한 얘기를 꺼냈다."그는 기관사 프레보와 함께 출전했지요. 파리-사이공 간 비행기록 경신에 도전한 것입니다. 이 구간을 47시간 안에 날면 그는 상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죠. 그런데 불행히도 이륙 4시간15분 만에 리비아 사막에 추락하고 말았답니다. 프레보와 닷새 동안을 버티다 갈증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베두인 상인들에게 발견돼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지요. 이때 얘기가 '인간의 대지'와'어린왕자'에 담겨 있지요. 1936년 그는 한 잡지사 특파원으로 내란이 터진 스페인에 들어가 활약하기도 했죠."

"그때 거기서 헤밍웨이를 비롯한 현실참여파 문인들과 만났던가요?"그녀의 질문에 이강은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이 생텍쥐페리와 관련된 것이 아닌지'물었다. 그녀는 아니라고 했다.

"어떤 주제인지 말해줄 수 있어요? 혹시 경제 분야는 아닌가요?"이번엔 소왕이 물었다.

"맞아요. 경제 쪽이예요.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부의 역할에 관한 것이죠."그녀의 대답에 소왕은 너무나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이강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곤 말을 돌렸다.

"경제 강의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듣기로 하고, 오늘은 생텍쥐페리 스토리를 마저 진행하죠."

이강은 생텍쥐페리의 마지막 순간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그는 다시 공군에 들어가 툴루즈 공군기지에 배치됐지요. 전투기를 몰기에는 나이가 많다고 해서 조종사 훈련반에 배치됐다고 해요. 그러나 그는 그 일보다는 직접 폭격기를 조정하길 원했답니다. 부대장은 그의 과거 사고기록을 문제삼아 5회 이상 비행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의 비행단 복귀를 승낙했지요. 44년 5월 마침내 그는 폭격기 중대에 편입됐습니다. 그리고 명령을 어기고 8회나 출격했습니다. 마지막 비행은 44년 7월 31일이었죠. 라이팅 P38기를 몰고 그는 코르시카섬의 보르고 기지를 이륙했습니다. 기나긴 전쟁에 마침표를 찍을 미군 상륙작전을 앞두고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한 정찰비행이었죠. 그런데 몇 시간 뒤 그가 탄 전투기가 레이더에서 사라졌어요. 그리고 아무도 다시 그를 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독일군 정찰기에 의해 격추됐다거나 어린 왕자를 따라 별나라로 갔을 거라는 추측만 남기고 말이죠."

"그때 그의 나이가 고작 44세였지요."

"아, 길지 않은 인생이 정말 소설 같은 사람이네요."소왕이 이렇게 말하며 이강에게 물었다.

"세상에 소설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생텍쥐페리와 같은 사람은 아주 특별하다고 봐야지. 재능도 그렇고,실제 삶도 그렇고."

"맞아요. 세상에 다 그런 사람만 있으면 그 사람의 인생도 평범한 것이 되겠죠.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있기에 생텍쥐페리의 삶이 돋보이는 게 아닐까요?"오수아씨가 그렇게 마무리했다.

생떽쥐페리의 생애를 소재로 얘기를 나누다 보니 통조림 속 같은 비행기 여행이 전혀 지루한 줄 몰랐다. 목적지인 파리까지 30분 남았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비행기는 정확히 예정된 시간에 도착했고, 두 사람은 오수아씨에게 서울에 돌아가면 한번 보자는 인사를 건네고 헤어졌다.

심상복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