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순방 앞둔 부시의 “으름장”/문창극 워싱턴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미 백악관은 부시 대통령의 내년 1월초 아시아순방을 앞두고 이례적인 2개의 모임을 마련했다.
백악관은 19일 한국·일본·싱가포르·호주등 순방국 워싱턴특파원들을 따로 모아 순방을 앞둔 부시 대통령과의 회견자리를 마련했다.
이에 앞서 부시 대통령은 또 자신을 수행할 기업인들과 만나 순방 상대국의 시장개방문제를 놓고 대책회의를 가졌다.
미국 대통령이 해외여행을 하면서 기업인을 대동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있는 일이다. 더구나 이들 업계대표들은 대통령면담 직후 백악관에서 별도의 기자회견까지 갖고 전의를 과시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여행의 우선순위가 상대국의 시장개방에 있음을 처음부터 솔직히 인정했다.
그는 이번에는 결코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까지 표명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지금까지 너무 자제해 왔다』면서 이번 여행을 통해 지금까지의 시장개방에 비타협적인 장애요인들을 완전히 없애버리겠다고 으름장까지 놓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이렇게 강하게 나서는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루 전날 미국의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제너럴 모터스(GM)사가 북미지역 21개공장의 문을 닫고 7만명의 종업원을 해고하겠다고 발표했다.
부시 대통령을 수행하게될 리 아이아코카 크라이슬러 자동차회장도 이날 대책회의에서 미국은 일본에 겨우 1만5천대의 자동차를 수출하는데 비해 일본은 미국시장에 3백90만대를 팔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미국경제가 이지경이 된 원인은 미국은 시장을 열어 놓고 있는데 상대국들은 닫고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내년 재선을 앞둔 부시로서는 경제회복여부에 사활이 걸려 있으며 그 돌파구를 수출에서 찾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10억달러 수출에 2만명분의 일자리가 새로 생긴다는 점을 역설하며 이번 순방으로 결판을 내겠다는 자세다.
금년에 1백억달러이상의 무역적자에 대미무역적자만도 12억달러에 달하는 우리 처지로서는 이러한 미국의 압력때문에 내년에는 더욱 상황이 어렵게 될 것이 불을 보듯 훤하다.
내년에 남북한 정상회담도 해야하고 선거도 여러번 치러야 하는줄은 알지만 우리가 정신을 팔고 있는 사이에 국제환경은 점점 더 어려워져간다는 점을 모두가 심각하게 깨달아야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