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손 전 지사 오해했나

중앙일보

입력

청와대 정무팀은 21일 노무현 대통령의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을 비판한 전날 발언과 관련 "(새로운 정치질서의 창출에 하나의 밀알이 되고자 탈당했다는) 그의 탈당의 변이 진심이라면 대통령의 비판은 손 전 지사를 오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무팀은 이날 청와대 브리핑에 게재한 '대통령이 손학규 전지사를 오해했는가'라는 글에서 먼저 손 전 지사가 "대통령 선거에서의 개인적 이해관계와 관계없이 탈당한 것이라면 용기있는 결단"이라고 밝혔다. 만약 그렇다면 "원칙을 파괴하고 반칙하는 사람은 진보든 보수든 관계없이 정치인 자격이 없다"는 대통령의 비판은 손 전지사를 오해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의 탈당이 한나라당 내부의 경선구도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대권을 위해 다른 길을 찾아 나선 것이라면, 이는 민주주의 근본 원칙을 흔드는 것이며, 정치를 과거로 돌리는 행동"이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대통령은 손 전지사의 탈당 그 자체를 문제삼는게 아니라 "탈당이라는 행위 자체보다는 그 행위가 원칙에 부합하는 것인지 충분히 가치있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는 변.

이와 함께 한국 정치사에서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의 탈당 사례들을 거론하며 ^명분도 있고 성공한 사례 ^명분은 있었으나 실패한 사례 ^명분은 적었지만 성공한 사례 ^명분도 없고 성공하지도 못한 사례로 그 유형을 네 가지로 구분했다.

우선 1985년 2.12 총선을 앞두고 창당한 신민당, '87년 이른바 이민우 내각제 구상에 반발하여 창당한 통일민주당, 2003년 17대 총선을 앞드고 민주당을 탈당.창당한 열린우리당 등은 명분도 있고 성공한 탈당으로 분류했다.

다음 명분은 있었으나 성공하지 못한 사례는 90년 3당 합당에 반대한 노무현, 김정길 의원의 통일민주당 탈당을 들었다. 이 경우는 "현실정치의 벽을 넘지 못해 좌절했다"고 했다.

셋째, 명분은 적었지만 성공한 사례는 95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을, 마지막으로 명분도 없고, 성공도 하지 못한 유형에는 97년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탈당한 이인제 의원, 지난 대선 당시 김민석 의원의 민주당 탈당 등을 꼽았다.

청와대는 "선거를 앞두고 탈당해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는 경우, 원칙과 대의명분없이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며 "오히려 명분과 실리를 모두 놓치고 정치인으로서의 지도력과 신뢰에 심각한 타격을 입으며 몰락하기 십상"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이어 "대통령이 손 전 지사의 뜻을 오해한 것인지 아닌지는 두고 볼일"이라며 "그가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 명분을 버리고 탈당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정치질서의 창출에 하나의 밀알이 되고자 탈당'한 것인지는 곧 드러나게 될 것이고, 어쩌면 손 전지사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디지털뉴스 [digital@joongang.co.kr]

아래는 게재글 전문.

어제(20일) 대통령은 "탈당을 하든 입당을 하든 평상시의 소신을 갖고 해야지 선거에서 불리하다고 탈당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손학규 전경기도 지사의 탈당을 비판한 바 있다.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 (…) 모든 가능성과 기득권을 버리기로 결심"하였고, 나아가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기 위해 불쏘시개나 치어리더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탈당의 변이다.

그의 탈당의 변이 진심이라면, 대통령 선거에서의 개인적 이해관계와 관계없이 탈당한 것이라면 용기있는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원칙을 파괴하고 반칙하는 사람은 진보든 보수든 관계없이 정치인 자격이 없다"는 대통령의 비판은 손 전지사를 오해한 것이다.

대선후보 되기 위해 탈당한 것 아니라면 오해

그러나 만일 그의 탈당이 한나라당 내부의 경선구도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대권을 위해 다른 길을 찾아 나선 것이라면, 이는 민주주의 근본 원칙을 흔드는 것이며, 정치를 과거로 돌리는 행동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사를 되돌아보면 선거를 앞두고 자신이 몸담았던 정당을 탈당했던 예가 적지 않다. 탈당의 명분과 성공여부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으로 명분도 있고 성공한 사례를 보자. 대표적인 사례가 '85년 2?12 총선을 앞두고 창당한 신민당이다. 당시 제1야당인 민한당은 여당인 민정당의 2중대에 다름 아니었다. 따라서 민주세력에게는 군사독재 체제와 대항하고 민주세력의 단일 대오를 형성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가 놓여 있었다. 당시 DJ와 YS는 공동으로 선명 야당의 기치를 내걸고 신민당을 창당, 25일만에 제1야당으로 발돋움하였다.

'87년 이른바 이민우 내각제 구상에 반발하여 탈당, 통일민주당을 창당한 사례 또한 같다. 내각제를 매개로 중도통합론으로 불리는 이민우 구상은 직선제 쟁취의 개헌 요구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로서 이에 대항하여 신민당 소속 90명의 의원 중 78명이 질서있는 탈당을 통해 통일민주당을 창당하였다.

2003년 열린우리당의 창당도 마찬가지이다. 정치개혁, 지역주의 타파라는 대의를 위해 낙선의 위험을 감수하고 민주당을 탈당, 열린우리당을 창당하고 17대 총선에서 원내 과반수를 차지하며 국민적 지지를 획득하였다.

위 3가지 사례 모두 명분이 분명하였기에 성공한 사례이다. 만일 명분과 시대정신을 담지 못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은 명분은 있었으나, 성공하지 못한 사례로는 노무현, 김정길 의원 등이 '90년 3당합당에 반대하여 통일민주당을 탈당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들의 탈당은 정치적 가치와 대의명분을 지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정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한 바 있다.

세 번째로 명분은 적었지만 성공한 사례도 있다. '95년 새정치국민회의의 창당이 대표적이다. 당시 통합민주당의 분열과 지역주의 정치구도의 강화를 낳은 새정치국민회의는 15대 총선에서 제1야당에 등극하였고, 97년 대선승리의 토대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김대중 前대통령이 수십 년간 축적해온 정치적 지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인적 정통성이 당적 정통성을 압도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1인 지배체제가 해소된 정당체제에서는 과거 새정치국민회의와 같은 성공 사례가 다시금 발생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명분도 없고, 성공하지도 못한 유형으로는 '97년 신한국당 대선 후보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패하고 결과에 불복하여 탈당, 국민신당을 창당한 이인제 의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아무런 대의명분없이 행동하여 실패한 전형적 사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외에 지난 대선에서의 김민석 의원의 민주당 탈당 등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은 이른바 보따리 정치인들의 몰락도 이와 같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원칙과 대의명분 없이 성공한 사례 극히 드물어

선거를 앞두고 탈당하여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는 경우, 원칙과 대의명분없이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오히려 명분과 실리를 모두 놓치고 정치인으로서의 지도력과 신뢰에 심각한 타격을 입으며 몰락하기가 십상이다.

정치는 물론 권력획득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명분과 가치가 없는 권력 획득이란 주객이 전도된 것이며, 지금처럼 국민의 민주역량이 성숙한 사회에서는 권력획득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대통령은 손 전지사의 탈당 그 자체를 문제삼는 게 아니다. 탈당이라는 행위 자체보다는 그 행위가 원칙에 부합하는 것인지 충분히 가치있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손학규 전지사의 뜻을 오해한 것인지 아닌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가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 명분을 버리고 탈당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정치질서의 창출에 하나의 밀알이 되고자 탈당"한 것인지는 곧 드러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손 전지사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비판이 중요한 게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원칙과 명분없는 보따리 정치는 결국 국민들에 의해 몰락하고 말았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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