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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서 집착 핵소홀” 지적/남북총리회담 취재기자 방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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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처음부터 서두르는 느낌/남 “양보 안하려면 그만두자”에 북 “다시하자”/7천만 겨레에 해방이후 최대 송년선물 준셈
­이번 5차회담에서의 합의서 타결은 취재기자들조차 뒤늦게 그 의미를 되새겨봐야 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회담전에 미국등 우방과의 협의를 거치기는 했다지만 통일을 민족의 힘으로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같은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7천만 겨레에 해방이후 최대의 송년선물을 안겨준 셈입니다.
­한마디로 분단 한국사의 최대사건입니다.
형식면에서도 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양측 정보기관주도로 밀실·비밀접촉을 통해 성사됐다면 이번 합의서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서로의 국호를 사용하고 양측 정부의 총리가 서명한 최초의 공식합의문본이라는 점이 강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일각에선 좀 다른 시각의 평가도 있습니다.
○북측 양보가 더 많아
당초 정부방침은 합의서와 핵문제를 일괄 병행 처리한다는 것이었는데 합의서는 완전타결 했지만 핵문제는 구체적 조치없이 논의의 시작만 약속한 것 아니냐,우리측이 합의서를 끌어내기 위해 지나치게 양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지요.
­그러나 핵문제도 중요하지만 연계논리로 이를 끝까지 고집했다면 남도 북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합의서내용을 보면 북측의 양보가 더 많았던 것 아닙니까.
­그래요. 남측 대표단들은 『우리 주장이 거의 수용됐다』 『99%가 반영됐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북측 대표단은 지난 4차회담때까지와는 달리 첫날부터 초조해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합의서에 집착하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11일 오후 우리측이 한시간30분정도의 공식실무대표회담을 가진뒤 북측의 양보가 없는한 더이상 실무회담은 무의미하다고 통고하자 북측은 새벽에 실무회담을 재개하자고 채근했어요.
­결국 북한측은 평양과의 잦은 연락을 거쳐 최종입장을 정리한 12일 새벽에야 우리측과 비공식 막후접촉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북측은 처음부터 이번에는 꼭 서명해야겠다는 확고한 방침을 세웠다는 것을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었어요.
­이번 회담이 핵문제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취재진도 타결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무척 바빠졌지요. 취재진도 속속 보강됐고요.
우리 대표들에 따르면 북측대표들은 판문점을 넘어오면서부터 이번에는 꼭 서명하고 가야한다는 뜻과 함께 초조감을 보이더랍니다.
특히 북측의 한 대표는 사석에서 농담조로 『이번에 서명키 위한 도장까지 갖고 왔다』면서 만약 도장을 찍지 못하면 다시 만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했다더군요.
­이번 회담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 최봉춘 책임연락관은 우리대표를 일일이 만나 『이번엔 뭔가 이뤄야 하니까 남측이 너무 신경질내거나 회담을 깨지말라』고 신신당부하더랍니다.
­북측대표단이 10일 회담장이자 숙소인 워커힐에 도착해 발표한 도착성명에서도 이번 회담이 「분수령」이라는 표현을 썼고 구면인 북측기자들도 「고비」라는 말을 거듭 강조하더군요.
­한 북측 수행원은 북쪽 인민들도 분단이 계속되고 남북고위급회담이 1년이상 계속됐음에도 어떤 결실이 없다는데 대해 상당한 「의견」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회의가 마냥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어요. 남북양측은 10일 북측이 도착하자마자 비공식 접촉을 했지요. 여기서 불가침협정의 당사자를 「남북」으로 하기로 의견을 모았는데 11일 열린 실무대표회담에서 북측이 돌연 태도를 번복했어요. 그래서 한때 회담전망기상이 돌변하기도 했는데 결국 우리측 의견대로 됐습니다.
이는 아마도 남측의 최종 양보선을 알아보기 위한 북측의 전술이었던 것 같다는 분석입니다.
­북측대표단일행의 유연한 자세도 관심을 끌었습니다.
대표단이 공연관람이나 만찬참석에서 보여준 태도나 기자단이 지하철에 승차해 시민들과 나눈 얘기들을 보면 종전처럼 체제선전에 일방적으로 열을 올리던 강도가 조금 낮아졌어요.
­특히 3차 서울회담때 기자들이 우리측 안전요원을 따돌리고 임수경양 집을 방문했을때 보였던 공격적인 태도는 상당히 완화됐죠.
○재야단체 취재요청
­한 북한기자는 남측 젊은 기자들에게 전민련등 재야단체를 취재하고 싶은데 당국 모르게 협조해 줄 수 없겠느냐는 끈질긴 요청을 하기도 했어요.
내년도 재야단체의 투쟁방향을 알고싶다고 했다더군요.
­북측 기자들의 돌출행위가 자취를 감춘 것은 우리측이 대표단과 기자단의 숙소를 분리하고 기자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 것에도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번엔 당국의 통제가 예전과 달리 엄격했지요. 북측기자들은 『닭장 같다』『토끼장에 갇힌 느낌이다』며 불만을 토로했는데 상대적으로 우리측 기자들에게는 친밀감을 표했어요.
­정부당국은 『우리가 평양에 갔을때는 대표단·기자단 숙소를 분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완전히 외부세계와 단절시켜왔다』며 『상호주의 원칙을 이번에 적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 취재진의 불만도 있었지만 사실 10월 평양에서 개최됐던 4차회담때 북측이 했던 것도 생각해야죠.
­그러나 북측 기자들이 우리 보도진보다 외신기자들,특히 일본기자들에게 연형묵 총리의 기조연설문을 사전에 흘려 준다든지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씁쓸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회담전망이 밝아지면서 우리 시민들의 관심과 반응이 상당히 좋아졌지요. 11일 오후 롯데월드에 연총리 일행이 도착하자 쇼핑나왔던 3백여명의 시민이 환호와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래도 몇차례 교류과정에서 북한 사람들의 옷차림새나 매너가 세련되가고 있다는 말도 하더군요.
­합의서가 타결돼 그들도 안도 되는가 봐요. 대표단 표정도 환하고 기자들도 웃고….
­타결직후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장초청 만찬에선 분위기가 좋았지요. 예전같은 논쟁도 덜하고….
­이번 회담은 특히 막후협상이 중요했지요. 영변·군산 동시핵사찰제안이 나간 11일밤 북쪽의 제의로 한밤 비밀접촉이 이뤄졌지요. 최봉춘이 나서고 이쪽은 이동복 대변인등이 나섰는데 『양보의사가 있다』는 통고가 있었고 회담형식에 관한 논의도 있었지요. 그래서 12일 회담을 정회시켜놓고 비공개 실무대표접촉이 이뤄졌지요.
­11일밤엔 평양쪽 지침을 받느라 전화통화가 엄청났어요.
­서동권 안기부장의 새벽회담장 방문을 두고 말들이 많았죠. 서부장이 연총리와 비밀회담을 했다는건데….
○비공개접촉이 주효
­안기부측은 아니라고 공식부인 논평까지 냈어요.
­그러나 서부장의 워커힐 방문 목격자들이 「틀림없다」고 재확인 하더군요. 안기부측도 「공식부인」했다는 기록만 남기려는 눈치더군요.
­아무튼 남북간 큰일이 이뤄졌는데 앞으로 실천이 문제입니다. 이제 청와대기자들이 평양취재를 같지 모르겠군요.<정리=전영기기자>
□방담 참석자
정치부 박병석차장 김두우기자 김진국기자
북한부 안성규기자
사회부 고대훈기자 신성식기자
사진부 최재영차장 신동연기자 조용철기자 주기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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