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기자의문학터치] 문학이 직업이 안 되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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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요즘 문학 판이 영 뒤숭숭하다.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수군대기 일쑤다. 독재정권에 반대할 땐 누구보다 목청을 높인 문인들이지만 이번엔 푸념이나 늘어놓는 이가 태반이다. 그들로서는 좀체 어쩌지 못하는(또는 그렇게 보이는) 돈이 얽힌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나 문제의 핵심은 외려 간단하다. 문학만 해서는 생계가 어려운데 정부가 인색하게 군다는 것이다. 문학이 본래 돈과는 뜨악한 관계였다지만, 최근의 논란엔 일종의 계기 같은 게 있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김병익)가 올해 문학 분야 지원금을 대폭 삭감한 게 발단이 됐다. 지난해보다 지원금 25억여 원이 줄었다. 문단은 당연히 반발하고 나섰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정희성 이사장과 한국문인협회 김녕균 이사장이 함께 김병익 위원장을 찾아가 항의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에 가장 민첩하게 대처하는 주체는 기초예술연대란 문화예술인 단체다. 이미 몇 차례 토론회를 열었고 19일에도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기초예술연대는 문인 130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믿기지 않는 수치. 그러나 기초예술이 직면한 무서운 현실"(평론가 고명철)이란 평이 어울릴 만큼 결과는 사뭇 심각하다.

설문에 따르면, 한해 글을 써 얻는 소득이 50만원 이하란 답변이 응답자의 21%에 달했다. 응답자의 41%는 창작활동으로 인한 연간 수입이 100만원 이하라고 답했다. 다시 보시라. 월 소득이 아니라, 연 수입이다.

마침 이와 비슷한 통계가 지난주에 또 발표됐다. 문화관광부가 벌인 '문화예술인 실태조사'다. 문화부는 문학.음악.미술 등 10개 분야 문화예술인 2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창작활동 수입 월 평균 100만원 이하'란 응답이 전체의 56%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학 분야는 차라리 참담했다. '월 평균 수입 100만원 이하'란 답변이 응답자의 97.5%에 달했다. 201만원 이상은 0.5%, 그러니까 단 한 명이었다. '없다'는 응답도 37%나 됐다. 참고로 국악 분야에서 '월 평균 수입 100만원 이하'란 답변은 24%였다. 문학과 국악만 떼놓고 보자면 얼추 4배 차이가 나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간단하지만, 문제의 해결은 결코 간단치 못하다. 나라가 문화예술인을 부양하는 게 옳은 것이냐를 먼저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총괄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김병익 위원장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정부가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문제와 정부가 문화예술인 개인의 생계를 떠안는 건 별개 사안"라고 말한다. 문화예술 본연의 가치, 즉 세상 무엇에도 속하지 않으며 어떠한 규제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하는 문화예술의 대원칙이 나랏돈 몇 푼에 휘둘릴까 우려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 스스로 40년 가까이 문학평론을 한 문인이기에 그 고민의 깊이를 충분히 헤아린다.

1960년대 천상병 시인은 아는 얼굴을 만나면 대뜸 손가락 세 개를 펼쳐보였다. 그날 하루 술 마실 돈 300원을 달라는 표시였다. 시인은 그때 이렇게 말했단다. "니는 내한테 돈 주었다고 좋다 카겠지만, 니같이 시도 못 쓰는 놈은 돈 좀 내놔도 된다." 말하자면, 시인에게 납부해야 할 세금을 손수 징수하겠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 얘기도 먼 옛날의 일화일 뿐이다. 기초예술연대 조사엔 이런 항목도 있었다. '현재 글 쓰는 일 외에 직업이 있습니까.' 응답자의 79%가 '있다(비정규직 포함)'고 답했다. 엄격히 말해, 현재 시인이란 직업은 없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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