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칼럼

세금과 민주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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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금 종부세를 놓고 견해가 갈려 있다. 종부세 대상자들은 세금이 많다고 아우성이고, 종부세를 내지 않는 사람들은 "그 정도 재산이라면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한다", 심지어 "나도 그런 종부세 좀 내 봤으면 좋겠다"는 반응도 많다. 여론조사를 하면 종부세를 지지하는 사람이 80%에 달한다. 민주주의 나라에서 다수결의 원칙을 존중한다면 종부세는 당연히 그 입법도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다수가 지지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포함해 경제 부총리도 "종부세를 낼 능력이 없으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야당은 물론 대선후보라는 사람들도 입을 닫고 있다. 표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유재산의 문제가 다수결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 또 국가를 책임진 사람들이 "능력 없으면 집을 팔아라"는 식으로 사유재산의 처분 문제를 간섭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개인의 자유와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필요하다고 배웠다. 물론 "세금을 내라는 것이지 누가 사유재산권을 침해하자는 것이냐?"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세금이 어느 수준이 되어야 합당하냐다. 세금이 갑자기 높아져 살던 집에서 나가야 할 때 이것이 단순히 세금의 문제일까. 이때 국가는 개인 재산 보호자인가, 아니면 수탈자인가. 만일 재산이나 세금 문제를 다수결로 해결한다면 언제나 민중적 욕망이 승리할 것이다. 세상은 재산이 적은 사람이 많은 사람보다 항상 다수이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한다면 민주주의 방식으로 타인의 재산을 빼앗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자유도 마찬가지다. 다수의 이름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사유재산권에 대한 찬가를 부르자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무제한한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훼손시키듯 무제한한 사유재산권이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공동체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재산의 힘으로 타인을 굴종시키거나 억압한다면 진정한 자유는 보존될 수 없다. 따라서 개인의 자유나 재산을 제한할 수 있는 유일한 명분은 공공선을 위한 경우일 뿐이다. 물론 이때의 공공선은 전체주의적 공공선이 아니고 건전한 상식을 가진 자유인들이 합의할 수 있는 내용들이어야 한다.

우리같이 좁은 나라에서 주택은 무제한한 개인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재화가 될 수 없다. 특히 주택이 투기의 대상이 되어 버리면 그로 인한 희생자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이 나라가 책임 있는 자유인들의 공동체라면 타인의 주거 기회를 손상시키면서까지 사유재산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1가구 1주택이라는 주거 소유의 제한에 대한 잠정적인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이 주택 문제에서 공공선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종부세가 징벌적 효과를 노린 점이 있다면 이를 부과할 때 공공선을 위배했는지 여부를 따져야 세금의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1주택 소유자들이 자신들의 의지나 계획과는 아무 상관없이 세금을 내지 못해 살던 곳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고, 그것을 보고 박수를 친다면 이 나라가 건강한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언젠가 다수의 이름으로, 다수결로 통과된 법의 이름으로 나의 재산은 물론 생명과 자유까지 억압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문창극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