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 즐기고 이익도 남기고…|미술작품 투자클럽 성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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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회사원 장한수 씨(43·서울 가악동)는 지난해 초 대학동창 10명과 함께 「미술투자클럽」을 결성했다. 매분기 보너스 때마다 한 사람당 50만원씩을 내 미술작품과 골동품을 구입, 값이 오르면 되팔아 이익을 분배하는 것이 이 클럽의 역점사업(?)이었다.
회원들은 지난해 6월 원로 서양화가 작품을 2천만 원에 구입, 올 연초에 6천만 원에 팔아 1인당 4백만 원씩 나눠 가졌다.
주부 박모 씨(35·서울 청담동 현대아파트)는 매주 3∼4차례씩 인사동과 강남화랑가를 찾는다. 지난 6월 인사동 모화랑에서 구입한 미술작품의 현시세도 알아보고 작품정보도 수집하기 위한 나들이다.
박씨는 지난 7월 매월 20만원씩 3년 간 부은 적금을 만기해지, 중견작가의 서양화 1점을 8백만 원에 구입했다. 『투자가치도 있고‥ 취미생활도 즐기고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그림수집을 시작한 것이다.
최근 박씨가 구입한 이 작품 시세는 1천만 원. 넉 달만에 2백만 원이 올랐다.
정모씨(43·H증권부장·서울 방배동)는 89년 4월 이후 호황을 누리던 증권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일찌감치 자신의 주식을 모두 정리하고 미술품을 투자대상으로 공략했다.
현재 정씨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동양화·서양화 등 모두 11점.
작품 값도 해마다 평균 2∼3배씩 올라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 값이 모두 2억여 원에 이른다는 것이 정씨의 자랑이다.
정씨는 그림이 하나둘 늘어나자 자신의 아파트 응접실을 아예 작은 화랑으로 개조했다.
응접실의 모든 장식품들을 치우고 벽면에 흰색 칠을 한 다음 조명등까지 설치, 아늑한 화랑분위기를 내고있다.
미술작품투자 대중화시대-. 과거 일부 부유층·미술애호가들이 중심이 됐던 그림투자계층이 대학생에서부터 샐러리맨·가정주부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주식시장침체·부동산경기퇴조현상은 미술작품 투자 붐을 부채질하고 있다.
목돈이 없는 샐러리맨들은 보너스를 탈 때마다 1∼2점씩 그림을 사 모으거나 할부로 구입하기도 한다.
또 마음에 맞는 직장동료, 대학·고교동창들끼리 미술투자클럽을 조직해 공동으로 작품을 구입한 다음 일정기간이 지난 후 되팔아 차익을 배분하기도 한다.
인사동 S물산 직원 장모씨(31·서울 한남동)는 『과거에는 점심시간 때 증권회사에 들러 증권시세를 열심히 점검했으나 지난해 말부터 주식에서 손을 떼고 거의 매일 화랑에 들러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했다.
장씨가 지난해말 보너스를 털어 구입한 중견작가 그림 2점 값은 현재 구입당시보다 50%가 뛰었다.
이에 따라 화랑가에서는 이들 중산층 고객유치를 위해 종전 인기 원로작가에 의존해 온 작품전 개최방식을 지양, 중견·신인작가들에게도 작품 전을 열 수 있는 기회를 대폭 제공하고있다.
인사동 K화랑이 지난달 1일부터 10일간 개최한 신인작가전시회에는 3천여 명의 관객이 몰려 연일 성황을 이루었다는 것이 화랑관계자의 설명.
이밖에 국립현대미술관·각 언론사문화센터 등이 실시하는 미술강좌도 연일 몰리는 수강생들로 만원성황이다.
미술작품 투자 대중화, 그림 강좌수강 붐 등은 한국미술의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미술작품을 건전한 투자가 아닌 투기의 대상으로 삼는 투기 붐이 과열될 때 진정한 예술은 꽃필 수 없다는 것이 미술을 아끼는 시민들의 지적이다. <정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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