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노 스승, '이명세의 M'을 카메라에 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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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감독 이명세(50.사진(右)). 그의 새 영화 'M' 촬영 현장에는 고령의 여성 스태프가 한 사람 있다. 송혜숙(66.(左)) 전 서울예대 교수다. 국내 연극.영화 배우들의 대모로, 1년 전 정년퇴임식 때 영화배우 김수로.유해진, 영화감독 장진, 연극배우 전무송 같은 스타제자들이 모여 화제가 됐다. 서울예대 영화과 77학번인 이 감독도 송 교수의 30년 제자다. 송 교수는 요즘 카메라를 어깨에 걸머지고 'M'의 메이킹 필름과 '다큐멘터리 이명세'를 찍고 있다. 정년 퇴임 후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던 그다. "단편영화 연출 수업 때 만든 첫 작품을 보고 재능을 확신했다"는 그는 "이명세 감독님이야말로 영화천재"라고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송 교수는 줄곧 '이 감독님'이라는 깍듯한 존칭을 썼다). 두 사람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영화사 M'에서 만났다. 'M'은 서로를 알아보고 후원해 온 두 사람의 은밀한 암호 같았다.

-어떻게 이뤄진 프로젝트인가.

송혜숙=원래 영화를 아주 좋아했고, 다큐멘터리에 대한 오랜 꿈이 있다. 물론 이명세 영화의 왕팬이고. 이 감독도 돈 많이 벌면 다큐 제작비를 대겠다고 했는데, 이번에 촬영 현장을 제공해 약속을 지켰다(웃음). 촬영을 돕는 졸업생 한 명과 함께 초속성 촬영실습을 받고 현장에 나왔다.

-노스승이 최고령 스태프로 지켜보는 게 부담스럽진 않나.

이명세=미국에는 여든 넘은 촬영스태프.제작자.감독이 많은데 최근 우리 현장은 급격하게, 너무 젊어졌다. 선생님 같은 분이 많이 나와야 한다. 워낙 제자들 술값.밥값에 용돈 챙기는 것으로 유명한 분이시다. 현장에 샌드위치도 만들어 오시고 내게 싸주신 마늘이랑 보약도 한 보따리다. 한마디로 천군만마다. 가족처럼 뵙다 보니 제자의 본분을 잊을 때도 많다. 조성우 음악감독이 제자 맞느냐고 묻더라.(웃음)

-이 감독 작품을 어떻게 이해하나.

송=국내에서 내러티브 중심이 아니라 영화적인 영화를 찍는 거의 유일한 작가 감독이다. 리듬.색감.미장센 등 그의 영화언어가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오직 스토리 중심으로 평가되는 풍토가 안타까웠다. 영화에서는 무엇보다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좌파영화.테제영화의 강한 전통 때문인 것 같다.

-다큐 제목이 'M을 찾아서'다.

송=이명세는 아직도 영화를 찾아서 헤매는 사람이니까. 미장센(mise-en-scene), 움직임(motion), 영화(movie)가 모두 M이다. 하필 새 영화 제목이 'M'이고 주인공도 민우다. 이명세도 M이고. 결과적으로 '미로(maze)를 찾아서'다. 메이킹 필름은 연기연습, 배우들의 변신, 조명.공간.디자인 등 메이킹 전 과정을 꼼꼼히 수록할 생각이다.

-전작 '형사'는 평가가 엇갈렸다. 줄거리보다 감정의 드라마를 이미지로 표현한 감독의 의도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달까.

이=나는 오직 영화를 영화적으로 증명하고 싶을 뿐이다. 사실 새로운 이야기란 없다. 새로울 수 있고, 중요한 것은 영화의 문체다. 최근 우리 영화의 소재가 다양해졌다고는 하나 영화 자체의 다양성은 실종된 것 같다. 'M'에서도 나는 내 길을 갈 뿐이다.

-이명세는 어떤 학생이었나.

송=이미지에 대한 재능이 남달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오직 영화만 생각하고 영화 얘기만 하는 학생이었고. 나랑 영화적으로 잘 통해 졸업 후에도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내게 보여 주는 게 통과의례였다.

이='시인은 24시간 시만 생각하라'는 보들레르의 말이 있다. 나는 영화적 재능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24시간 영화만 생각해도 모자란다. 꿈도 주로 영화 꿈이다. 앨프리드 히치콕, 오즈 야스지로, 오선 웰스가 나오고, 예전에 조감독을 지냈던 김수용 감독님도 자주 나오신다. 내 영화인 줄 알고 가보면 감독님 연출로 바뀌어 있는 거다. 학생들 시험 보는 꿈 같은 거다.

-처음 영화 도전인데 연극과의 차이는 뭔가.

송=연극은 한정된 공간 안에서 배우와 관객이 직접 만난다. 영화가 만들 수 없는 뜨거운 부분이 있다. 반면 영화는 훨씬 자유롭고 쿨한 매체다. 영화 연기와 연극 연기의 차이에 대해서도 통찰을 얻고 있다. 예전엔 별 차이 없다고 느꼈는데, 연극의 '메소드 연기'를 스크린에 그대로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이=연극적 연기가 감정의 연속, 흐름이라면 영화는 지금, 찰나의 연기다. 배우가 인물과 상황의 전체를 다 알아야 한다는 건 오해다. 물 마시는 연기면 거기에만 집중하면 된다. 또 영화의 샷에는 감정이 있다. 보통 클로즈업이라면 배우가 표정 연기를 더 하는데, 샷 자체에 감정이 있으니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이다. 강동원하고는 '형사'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인데 그가 꽃미남 배우라는 편견, 혹은 영화적 연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싶다. 보통 명연이라면 울부짖는 연기, 기형아 연기 같은 걸 높이 치는데, 오히려 샷의 감정을 이해하고 샷 속에서 잘 움직이는 것이 훌륭한 영화 연기의 기준이 아닐까. 강동원.장동건 같은 배우는 그들이 갖고 있는 어떤 것 때문에 연기를 안 해도 되는 국면이 종종 있다. 그 사람이 갖고 태어난 것도 연기의 일부로 인정해야 한다. 강동원은 내가 그냥 '어엉'하면 '에에' 하면서 기막히게 알아듣는다.

송='M'을 통해 배우 강동원을 새로 발견하게 됐다. 이 감독과 비슷한 DNA를 가진 영혼이 아닐까 싶다. 영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배우다. 영화적 연기에 대한 발견, 이미지에 대한 실험. 'M'은 이명세 영화의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글=양성희 기자 <shyang@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이명세 감독의 영화 'M' 은 …첫사랑의 망령에 시달리는 소설가

10월 개봉 예정인 'M'은 '형사'에서 처음 이명세를 만난 강동원이 주연하고 공효진.이연희 등이 출연한다. 미남 소설가가 첫사랑의 망령에 시달리는 이야기다. 언뜻 멜로처럼 보이지만 스릴러.공포 등 여러 장르가 어우러진다. '형사' 때 비주얼에 비해 줄거리가 빈약하다는 평을 받았던 이 감독은 "이야기에도 치중했다"며 의욕을 보였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홍경표 촬영감독이 처음 이 감독과 호흡을 맞춘다. 이 감독이 직접 프로덕션 디자이너를 맡은 것도 이채롭다. 감독의 미학을 잘 살리면서 미술감독 개런티 등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100억원에 육박하는 제작비의 '형사'와 달리 'M'의 순 제작비는 30억원 미만. 빠듯한 살림살이지만 그럴싸한 '때깔'을 내는 이명세의 마술이 현장에선 연일 화제다. 협찬받은 통유리와 다른 영화세트에서 뜯어온 폐품 타일로 완성한 호텔 세트가 대표적이다. 제작비는 150만원이지만 효과는 1000만원대 럭셔리 세트라는 소문이다. 다른 세트들도 모두 재활용, 리모델링으로 저렴하게 완성됐다.

베스트셀러 작가 민우는 늘 뒤통수에 머무는 시선을 느낀다. 어느 날 기묘한 분위기의 술집에서 신비로운 여인 미미(이연희)를 만난 그. 그러나 약혼자 은혜(공효진)의 전화를 받고 깨어난 그는 모든 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된다. 민우는 환상 속 여인이자 첫사랑 미미를 추적한다. '형사'의 주제어였던 '움직임'에 '빛과 그림자'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끌어들였다. '빛과 그림자'는 'M'의 촬영.조명.세트.연기 등 모든 미학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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