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넥의 지혜(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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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생텍쥐페리의 소설 『인간의 대지』를 보면 페넥이란 조그만 동물이 등장한다. 일명 「사막의 여우」라는 이 동물은 낮에는 뜨거운 모래속에 숨었다가 이른 새벽이면 나타나 먹이를 찾아 헤맨다.
페넥의 먹이는 달팽이다. 사막의 새벽 이슬이 채 마르지않은 풀포기에 매달려 있는 달팽이. 그러나 페넥은 그곳에서 한두마리의 달팽이만 잡아 먹고는 또다른 풀포기를 찾아나선다.
만일 페넥이 조심성 없이 한곳에서 달팽이를 배불리 먹는다면 달팽이의 씨가 마를 것이 뻔했다. 달팽이가 없어지면 페넥도 결국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그 미물의 짐승은 알고 있었다.
요즘 우리사회의 병폐로 지적되고 있는 과소비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고질병은 식생활의 낭비를 들지 않을 수없다.
식탁에서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하루 2만3천여t. 밥상의 3분의 1을 먹지 않고 그대로 버리는 꼴이니 우리의 음식 과소비실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구한말 우리나라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미국의 선교사 그리피스가 쓴 『은둔의 나라 한국』에 이런 대목이 있다. 『조선에서는 식사를 많이 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며 잔치의 평가는 질에 있는게 아니라 양에 있다.』
그는 한국인들의 잔치상에 놓인 그 많은 음식들을 보고 놀랐고 그것을 배가 터지도록 먹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랐다. 가난한 시절이던 1백년전 서양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측은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를 측은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국민소득이 6천달러를 넘어섰고 세계 11위의 무역국소리도 들었다.
그런데도 우리의 식생활 관습을 보면 1백년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진데가 없다. 차려 나오는 음식상은 마치 사흘 굶은 사람 대접하듯 넘치고 흐른다. 뷔페식당 같은델 가보면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덮어놓고 수북이 담아 갖다 놓는게 예사다. 이같은 우리 국민의 식민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정부는 지난 73년에 실시했다가 실패한 음식점의 식단제를 또 들고 나왔다. 그러나 우리의 뿌리 깊은 식문화의 의식전환 없이는 백약이 무효일게 틀림없다. 새삼 페넥의 지혜가 아쉽다.<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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