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면 오르고 사면 내리는 ‘눈물의 3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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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대한민국 주식 시장은 개미들의 피와 땀으로 자랐다. 그러나 개미들에게 시장은 냉정했다. 개미의 자양분을 먹고 몸집을 키우면서도 정작 개미들의 허리는 가늘어져만 갔다. 왜 개미들은 돈을 잃기만 하는 것일까. ‘개미의 지옥’이 돼 버린 주식시장을 전면 해부한다. 과연 개미가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노하우를 알아보고, 개미로 출발해 수퍼 개미가 된 사람의 경험담도 들었다.


증권 시장은 개미(개인투자자)의 지옥인가? 증시 역사는 ‘그렇다’고 답한다. 지난해도 개미는 패자였다. 2005년 상승장에도, 2002년 급등락장에도, 2000년 폭락장 때도 개미들은 돈을 잃었다. 1994년 주가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때도 개미는 축제의 끝머리에 들어와 결국 눈물을 흘리고 증시를 떠났다. 불과 얼마전 종합주가지수 1470을 넘기며 한국 증시 51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때도 개미는 소외자였다. 왜 그들은 돈을 잃는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비쌀 때 사서, 쌀 때 팔기 때문이다. 늘 그랬다. 개미가 팔면 주가는 오르고 사면 내려갔다. 이 사이 기관투자가와 1990년대 초부터 한국 증시에 들어온 외국인은 개미와 반대로 팔고 사면서 돈을 벌 수 있었다. 축제의 소외자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불과 얼마 전에도 그랬다. 올 들어 1350~1400 박스권(거래소 기준)에서 오르락 내리락하던 주가는 지난 2월 1일부터 반등을 시작했다. 22일에는 역대 최고점을 기록하고, 나흘 연속 신기록을 경신했다. 이 사이 증시 세 주체(개인·외국인·기관)의 성적표는 어떨까? 개인이 내다 판 종목은 올랐고, 매수한 종목은 떨어졌다. 개인의 매수가 많았던 상위 10개 종목의 수익률은 -0.25%. 많이 팔아치운 상위 10개 종목은 오히려 18.15%나 올랐다. 반면 외국인의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 수익률은 16.58%로 코스피 평균 상승률 8.06%보다 두 배나 높았다. 개미들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넋두리하겠지만, 이런 현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를 보자. 지난해 증시는 2005년부터 이어진 상승세를 이어가다 5~6월 급락한 후 하반기부터 주가가 다시 치고 오른 해다. 지난해 외국인과 개인은 파는 데 치중했고, 기관은 매수 우위를 보였다. 외국인과 개인은 각각 11조8000억원, 2조9000억원을 순매도했다. 하지만 ‘매도의 질(質)’은 너무 달랐다. 외국인은 전기전자 업종을 대거 내다 팔았다. 개인은 이를 샀다. 지난 1년 동안 이 업종은 12.75%나 주가가 떨어졌다. 전체 업종별 등락률 최하위다. 반면 외국인이 사들이고(2388억원 매수), 개인이 내다 판(1875억원) 의료정밀 업종은 68%나 올랐다. 결국 순매수 상위 20개 종목을 기준으로,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26.95%, 16.28%의 주가 상승률을 기록했지만, 개인은 하락률 18.34%의 쓴 잔을 마셨다. 200포인트나 빠진 5~6월 급락기 때도 개미의 매매 패턴은 큰 문제점을 보였다. 특히 5월 11일 1460대를 넘긴 주가가 급속히 떨어진 20여 일 동안 개미는 1조원에 가깝게 주식을 사들였다. 외국인이 ‘팔자’에 나서자 개인이 덥석 받은 양상이었다. ‘저가 매입 타이밍’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개인들이 집중적으로 사들인 상위 20개 종목 중 오른 종목은 단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20%나 주가가 빠졌다. 이후 주가는 1200대 초반까지 빠졌다. ‘시장 급락, 개미 필패’가 확인된 기간이었다.

공허한 헛다리 매매 급락이 없던 ‘상승 대세장’에서도 개미는 손해를 봤다. 2005년 장이다. 당시 증권거래소는 ‘투자자별 매매평가 이익’이라는 것을 조사했다. 매매평가 이익은 주식을 사고 팔 당시 주가와 일정 시점의 종가를 비교해 매매 타이밍에 따라 얼마나 많은 손실과 이익이 났는지 알아보는 수치다. 개장 첫날 893으로 시작한 2005년은 9월 7일 114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이후에도 계속 올라갔다. 주가가 21%나 올랐던 1~8월 개미들은 1조6000억원대의 평가손실을 봤다. 팔지 않고 가만히 상승장을 누렸다면 잃지 않았을 돈이다. 같은 기간 외국인은 4778억원의 평가이익을 봤다. 개미들의 매수 타이밍도 헛다리였던 셈이다. 거래소에서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9000억원과 7000억원가량 평가이익을 본 사이 개미는 불과 100억원 수익에 그쳤다. 또 코스닥에서 개미들은 사지 않아야 할 종목을 사들여 1025억원의 손실을 봤다. 그렇다면 1년 내내 주가가 내려갔던 하락장은 어땠을까? 2000년으로 가보자. 그해 역시 출발은 좋았다. 하지만 증시 역사상 세 번째 1000대를 돌파한 1월 4일 이후 벤처 버블 붕괴로 주가는 곤두박칠쳤다. 원칙과 정반대로 투자 개미들은 한 해 동안 무려 118조원을 날렸다. 기관이나 외국인도 손실이 컸지만, 코스닥이 무너지면서 개인투자자의 손해가 상대적으로 컸다. 2000년 코스닥 지수는 연초 260대에서 50대까지 추락했다. 매매 비중이 78%에 달했던 개미들은 손절매 타이밍을 놓치면서 깡통이 된 계좌를 지켜보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렇다면 상승장도 아니고 하락장도 아닌, 등락장에서는 어떠했을까?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급등락장이 연출된 것은 2002년이다. 2001년 9·11 테러 때 하루 만에 6018억원을 팔아치운 개미들은 이후 주가가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하자 다시 증시로 돌아왔다. 주가는 400대에서 2002년 4월 900대를 회복한 후 다시 연말에는 500대로 빠졌다. 주가가 500~900대를 오르 내린 사이, 개미들은 ‘저점 매수, 고점 매도’라는 원칙과 정반대로 움직였다. 이코노미스트가 2002년 투자자별 거래 현황을 살펴봤더니, 개미들은 500~600대에서 7600여억원, 600~700대에서 2700여억원을 팔고는 지수가 800~900대로 올라가자 거꾸로 1조5000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다시 말해 쌀 때 팔고, 비쌀 때 산 것이다. 외국인은 정반대였다. 외국인은 주가가 500~700에 있을 때 3조원이 넘는 매수 주문을 냈고, 주가가 800대를 넘어 900대로 올라가자 1조5000억원어치를 팔아 차익을 남겼다. 당시 증권거래소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외국인이 순매수한 상위 20개 종목의 주가는 8%의 수익을, 개인이 순매수한 상위 종목은 평균 14% 손실을 봤다. 이런 양상은 내리막이 멈추고 급반등이 있었던 2002년 10월 이후 약 보름간 계속됐다. 이 기간 동안 주가가 20%나 튀어 올랐는데, 이때도 외국인과 기관은 2조6000억원어치를 매수했지만, 개미는 2조45000억원 정도를 팔았다.

개미는 외국인의 ‘밥’ 적어도 서너 박자 느리고, 그것도 늘 시장 원칙과 반대였던 개미들의 투자 습성은 80~90년대도 비슷했다. 92년 1월 3일 외국인 직접 주식투자가 허용되고, 주가 상하한 폭 확대 방침에다, 엔고 현상까지 겹치면서 94년 11월 8일 주가가 당시 사상 최고치인 1138을 기록했을 때도 매매 비중이 전체의 10% 안팎이었던 외국인이 주도했고, 개미들은 최고점을 불과 한두 달 앞두고 추격 매수에 나선 양상을 보였다. 이후 주가는 외환위기로 대폭락하면서 98년 6월 사상 최저치인 280까지 폭락하는 전반적인 길고 긴 하락장을 연출했다. 물론 외환위기 때도 양상은 비슷했다. 한 예를 보자. 한국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날인 97년 11월 23일 종합주가지수는 20.64P가 폭락했다. 이튿날에는 무려 34.79P가 빠졌다. 이 수치는 역대 거래소 하락률 12위에 해당한다. 공황에 빠진 개미들이 사는 사람도 없는데 무조건 팔자로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도 외국인은 일부 우량 대형주를 사들였다. 이런 모습은 하락장이 계속될 때도 이어져, 당시 한국전력·국민은행·삼성전자·대우중공업 등 우량주들을 외국인들이 헐값에 사들였고 향후 톡톡한 재미를 봤다. 3저 호황으로 증시 역사상 처음으로 1000고지를 넘었던 89년 4월도 ‘원로 개미’들에게는 아픈 추억이다. 그때는 외국인도 없었다. 당시 개인투자자들은 미수금 한도까지 주식을 긁어 사면서 ‘광분’의 현장에 동참했지만, 네 자리 주가 시대는 불과 4일 지속하는 데 그쳤다. 이후 주가는 계속 하락해 92년 8월 460선까지 미끄러지고 말았다. 사실상 개미들이 허탈함에 빠진 첫 번째 기간이었다. 내공 쌓거나, 증시 떠나거나 이렇듯 한국 증시의 역사에서 개미들은 늘 패자였다. 급락장 때마다 자살 소식이 이어졌고, 증시를 떠난 개미들도 속출했다. 그렇다고 모든 개미가 패자는 아니었다. ‘묻지마 투자’와 ‘공황 상태에서의 투매’ 같은 집단화 현상 속에서도 주식 투자의 원칙을 지킨 개미들은 큰 돈을 벌어, 수퍼 개미로 성장하기도 했다. 개미들의 투자 패턴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 직접투자보다는 간접투자를 선호하고, 단타 투자보다는 장기 투자를 선호하는 개미들이 늘고 있다는 것도 고무적이다. 사고 팔고를 반복하는 매매회전율도 감소하는 추세다. 그동안 외국인과 기관이 ‘개미들의 조급증과 욕심’을 적절히 이용하며 압도적인 승자 자리를 지켰다면, 이제 개미들이 변할 차례다. 결론은 간단하다. 정석 투자 원칙을 지켜가며 내공을 쌓거나, 전문가들을 믿고 간접투자로 돌아서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증시를 떠나는 것이다. 역사가 말해주는 교훈이다. 김태윤 이코노미스트 기자 pin21@joongang.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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