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웅」의 죽음(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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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804년 봄에 완성된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 『영웅』은 원래 나폴레옹에게 헌정하기 위해 작곡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베토벤은 코르시카섬 출신의 일개 포병사관이었던 나폴레옹이 대혁명의 와중에서 민중을 위해 싸우고 드디어는 프랑스의 초대 집정관이 되는 모습을 보고 이사람이야 말로 자유정신,인간해방의 기수로서 새 시대를 알리는 세기의 영웅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베토벤이 이 곡의 사본을 빈주재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 파리로 보내려 하고 있을때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즉석에서 『보나파르트』라고 된 표지를 찢어 버렸다. 그리고 『영웅』이란 표제를 붙였다.
영웅이란 어떤 존재인가. 영국의 역사학자 칼라일은 일찍이 영웅의 본질을 여덟가지로 정의했다. ①절대성 ②신화성 ③영원성 ④계시성 ⑤초인성 ⑥원래성 ⑦성실성 ⑧지배성이 그것이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그 비중은 다르다고 했다. 원시사회의 영웅은 신화성과 영원성을 지닌다면 중세의 영웅은 계시성,근세의 영웅은 지배성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영웅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언젠가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영웅」을 특집으로 다룬적이 있었다. 그 발제논문을 보면 『영웅은 영웅적 시대에만 탄생한다. 현대와 같이 비영웅적 시대에서는 영웅의 출현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현대를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영웅의 탄생이 불가능한 시대라고 규정하는 사람들도 현대적 영웅인 「대중영웅」(popular hero)의 존재와 그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현대의 매스미디어가 만들어 내는 이들 대중영웅은 두려움과 외경의 대상인 고전적 영웅과 달리 즐거움과 오락을 주며,싫으면 어느때나 외면할 수 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고전적 영웅을 거부하고 대중영웅을 좋아한다.
어제 날짜 중앙일보 파리특파원 기사를 보면 지금 프랑스는 이브 몽탕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도열기」로 들끓고 있다. 신문과 방송은 연일 이 대중영웅의 추모특집으로 메우고,빈소가 있는 그의 저택은 조문행렬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또한사람의 영웅 드골 이후 최대의 추모열기다.
70평생을 대중과 함께한 그의 따뜻한 향취가 파리지앵들을 더욱 슬프게 하는 모양이다.<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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