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합리화지정 수순만 남았다(신발·염색·직물 산업구조방향: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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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수출부진에 자금난… 휴폐업 속출/“고가품경쟁력 충분” 특혜논란 소지
신발·직물·염색업계가 몸살을 앓고있다. 이들 산업이 과연 사양산업이냐의 여부는 많은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우리 경제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필연적이다. 더욱이 내년에는 우리경제에 어려움이 가중돼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업종은 도태되고 나름대로 기반을 닦고 있는 업종은 살길을 찾아나설 수 있는 격심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신발·염색·직물업계의 실상과 산업구조조정방향을 2회에 걸쳐 알아본다.
『신발은 사양산업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등의 추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제품개발능력은 당분간 우리나라를 뒤따라올 수 없다. 합리화업종 지정을 통해 과잉설비를 줄이고 자동화시설·마키팅을 보완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산업이다.』(신발협회 김낙경 부회장)
『신발업계는 그동안 돈벌어 무엇을 했는가. 작년까지 호황을 누리다 몇달 어렵다고 정부에 손을 내미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다른 업종과의 형평도 고려했어야 한다.』(정부당국자)
신발업의 합리화지정문제를 둘러싼 상반된 시각이다.
그러나 신발업의 합리화 업종지정에 반대하는 정부내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크지 못하다. 신발업계의 어려움이 심화되고 있는데다 합리화지정문제가 정부고위층과 정치권에서 성급하게 검토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신발산업은 올해 1∼8월중 수출이 26억달러로 전년동기보다 6.9%가 줄어 들었고 물량기준으로는 13.5% 감소했다. 9월까지 휴·폐업한 업체는 28개에 이르고 있다. 전체 신발완제품업체(3백2개)의 9.3%에 달하는 규모다.
수치만봐도 업계의 불황이 한눈에 드러나고 있다.
앞으로의 전망은 더 어둡다. 최근 해외바이어의 수출주문량이 업체에따라 20∼30%나 줄었고 주시장인 미국의 경기침체로 나이키·리복등 3대 빅바이어의 주문은 평균 25% 감소했다.(상공부자료)
리복제품의 경우 인건비 상승 등으로 제조원가는 족당 17.5∼18달러인 반면 수출가격은 16.5달러에 불과하다.
게다가 신발업체의 연쇄도산을 우려한 원·부자재 공급업체의 현금결제요구에다 금융기관의 대출금회수까지 겹쳐 자금난이 심화되고 있다.
신발업이 국내산업에서 점유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신발업의 작년도 수출규모는 43억7백만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제조업수출의 6.6%,고용은 18만3천명으로 6.0%를 차지한다.
부산지역경제에서의 비중은 수출면에서 45.2%,고용에서 39.4%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산업합리화업종으로의 지정문제가 제기됐다. 그러려면 먼저 업계의 의견수렴을 거쳐 상공부에 지정신청을 해오면 공업발전심의회와 산업정책심의회를 거쳐 대상업종을 지정하는 것이 공업발전법에 따른 절차다.
이런 절차와는 달리 여야 모두가 나서 신발업계에 대한 자금지원 등을 요청했으며,특히 민주당의원들은 상공부를 찾아가 합리화업종 지정을 공식요청했었다.
이같은 정치권의 요구에 대해 정부내에서조차 『신발업계의 정식요청은 한차례도 없었다』는 반응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발업계는 지난달 30일 김낙경 신발협회부회장이 상공부에 찾아가 11월중 합리화 업종지정을 정식으로 요청하겠다고 밝혔을 뿐이다.
정부는 신발업계의 합리화업종지정 요청서류가 접수되면 합리화업종으로 지정키로 방침을 굳히고 있으나 정부내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경제기획원 관계자는 『산업합리화는 기본적으로 「정리」를 전제로하는 것인데 전체 신발업계가 정말로 이를 원하는지도 불확실하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상공부 김순 섬유국장은 『신발산업은 후발개도국과 가격경쟁력면에서 문제가 있으나 고가품은 경쟁력이 있다』며 『자동화설비투자를 통해 신발산업의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이봉서 장관은 민주당의 합리화업종 지정요청에 대해 『업계가 고유브랜드개발 등의 노력을 게을리했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과잉투자를 업계 스스로 조정하고 기업의 자구노력이 있다면 정부가 취할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답변했었다.
신발업에 대한 합리화업종지정은 결국 동업계에 대한 신규참여금지·과잉설비축소·재정자금지원등 특정업종에 대한 「특혜」소지가 있기 때문에 산업정책적인 측면에서 보다 충분한 검토가 뒤따라야할 것으로 보인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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