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곰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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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주름진 동굴에서 백일 동안 마늘만 먹었다지

여자가 되겠다고?

백일 동안 아린 마늘만 먹을 때

여자를 꿈꾸며 행복하기는 했니?

그런데 넌 여자로 태어나 마늘 아닌 걸

먹어본 적이 있기는 있니?



만난 지 백일 된 날 반지와 꽃다발을 받았죠. 꽃 없는 꽃다발, 너무 매워 눈물이 났죠. 너무 작은 반지를 위해 손가락 다이어트를 시작했죠. 반지와 꽃다발과 내 그림자 사이에 아린 것들이 떠다녔죠. 마늘꽃 피기 전의 꽃대를 꺾었어요. 마늘종은 마늘의 꽃줄기. 통통한 마늘을 먹으려면 꽃대를 꺾어야죠. 백일이 지나자 백 년 서약을 한 여자들이 마늘밭을 뛰네요. 마늘꽃 꺾는 여자들의 발목이 아릿하네요. 거룩해지기 위해 무언가 버려야 한다면 여자를 버리는 게 가장 쉬운 신들의 가정에서 여자인 당신은 행복한가요? 생각해 봐요, 곰곰… 곰여자를 곰곰….

<김선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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