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7곳서 '11시 콘서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9면

8일로 31번째를 맞은 서울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매월 둘째주 목요일)'가 2회부터 31회까지 30회 전회 매진이라는 보기 드문 기록을 세웠다. 2004년 9월 9일 열린 첫 회만 1000여석을 기록했을 뿐, 2500석은 아침 일과를 일찍 마치고 온 주부들로 매번 가득찼다. 공연을 본 사람은 7만여 명. 1년치 '시리즈 티켓'을 산 단골 고객도 올 들어 670명에 이른다.

이같은 '오전 음악회' 열풍은 전국으로 불었다. 서울은 물론 경기.부산.군포.김해 등 17개 음악홀이 이 아침 클래식 열기에 동참했다.

◆주부들의 오전이 바뀌다=서울 잠원동에 사는 주부 김성숙(52)씨는 예술의전당 콘서트 개근생이다. 그는 "그전에는 점심때 친구들을 만나 남편이나 애들 얘기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 설거지와 청소를 빨리 끝내고 이곳에서 음악을 듣는다"라며 "문화적 안목이 저절로 높아지는 걸 느낀다"고 흡족해했다. 경기도 분당에서 거의 매달 참석한다는 주옥현(51)씨도 마찬가지다. 주씨는 "며칠 전 아들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며 "아이가 '엄마가 그런 것도 알아'하며 놀라기에 어깨를 한번 으쓱해 줬다"며 웃었다.

이 같은 열기는 지방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2월부터 매월 '11시 모닝 콘서트'를 열고 있는 울산 문예회관의 심우윤(공연과) 씨는 "울산은 외국 단체 등 비중있는 공연을 보기 힘든 곳이었다. 때문에 클래식에 대한 욕구가 컸는데 특히 주부 관객의 반응이 굉장히 좋다. 클래식 공연은 관객이 50% 이하로 들어서 늘 썰렁했는데 지금은 60~70% 찰 정도"라고 말했다.

◆"정통 클래식으로 승부"='11시 콘서트'를 만든 사람은 예술의전당 김용배(53)사장이다. 2004년 취임과 함께 시작했다. 음악회 프로그램도 직접 짠다. 이 때문에 31번의 음악회에서 연주된 곡목은 거의 겹치지 않았다. 김 사장은 "지금까지 두 번 이상 연주된 곡은 단 두 곡"이라고 설명했다.

연주곡 수준도 쉽지 않다. 듣기 편하고 귀에 익은 곡을 '미끼'로 쓰기보다 클래식 음악의 정수로 정면으로 승부를 겨루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11시 콘서트에 꾸준히 참석하면 정통 클래식의 기초를 탄탄히 다질 수 있다"는 입소문이 주부들에게 먹혔다는 분석도 나온다. 월간 '객석'의 류태형 편집장은 "무엇보다 천편일률적이던 음악회 시간을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 맞아떨어진 성공작"이라고 평가했다.

김호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