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토지수용법 적용 방침”/강제채권 보상 내용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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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공특법의 현금 보상규정 사문화 우려/국회심의·법적용 과정등서 논란일듯
정부부처간의 이견으로 세차례나 번복되며 위헌시비까지 빚어졌던 토지보상·수용관계법개정안이 최종적인 정부안 결정단계에서 또 한차례 바뀌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협의 매수때의 보상에 관한 규정인 공특법과 수용문제를 다루고 있는 토지수용법의 내용이 서로 달라져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는 토지수용법쪽을 중시하겠다는 생각인데 이같은 방침은 타당성과 실효성 양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타당성문제=공특법은 협의매수등 보상조건에 관한 법이고 토지수용법은 강제수용때 적용되는 법이다.
공공기관이 도로·항만·공단건설 등을 위해 개인땅을 사들여야 할 경우 우선은 공특법에 의해 토지소유자와 협의매수에 나선뒤 합의를 보지 못할 경우에는 토지수용법에 의해 강제수용절차를 밟는 것이 원칙이다.
강제수용때에도 수용에 앞서 한차례 더 협의를 하게 되어 있으나 공특법상 협의와 중복의 의미가 있어 수용·피수용자가 합의,생략해온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보상방식에 관한 두법의 규정이 달라져 문제의 소지가 생겨나게 된 것.
예컨대 부재지주인 A씨는 보상금이 다소 적더라도 채권이 아닌 현금으로 받기를 원해 강제수용까지 가지 않고 협의매수에 응했다고 가정하자.
이때 공공사업시행자인 B기관은 현금이 없다는 이유로 채권보상을 제시했다.
정부는 이 경우 『서로 합의가 되지 않아 협의매수가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B기관은 수용절차에 들어가 채권보상을 강제할 수 있게 된다』는 해석이다.
정부는 특히 토지수용법에도 협의매수조항이 있기 때문에 사업시행자가 「공익사업」이라는 인정을 받기만하면 처음부터 공특법은 배제시킨채 토지수용법에 의한 협의에 나설 수도 있다고 밝혔다.
법조·법학계에서도 정부의 이같은 방침 자체가 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다.
문제는 이 경우 공특법의 입법취지가 무색해진다는 점이다.
즉 「소유자가 원할 경우에만 채권으로 지급할 수 있다」는 조항(3조2항)이 사문화될 우려가 생겨나게 된다.
바꿔말해 공특법에는 부재지주소유토지나 비업무용부동산이라 할지라도 본인이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현금으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분명히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이 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건설부나 법제처에서도 이와 관련,『보상금액이 합의가 됐음에도 불구,현금·채권등 보상방식에 이견이 있다고 강제수용절차에 들어가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는 일부 이견이 있다.
특히 공특법은 지난 62년 토지수용법이 제정된뒤 강제성이 강조되는 수용법의 부작용을 막고 원만한 합의에 의한 협의매수를 촉진시키기 위해 지난 75년 일종의 보완책으로 새롭게 제정됐던 점을 돌이켜 보면 이같은 입법취지에도 역행하는 측면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서울대법대 K교수는 『일반법인 토지수용법이 특별법인 공특법을 오히려 제한하는 꼴』이라는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실효성문제=채권강제보상이 얼마만큼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상당한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다.
원만한 합의를 보지못하고 강제수용은 물론 행정소송까지 가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는 상황에서 채권강제보상은 오히려 소유자의 저항을 불러 사업시행을 더욱 더디게할 우려가 있다는 것.
이와 관련,건설부의 한 관계자는 『강제수용까지 가지않고 소유자가 수용기관과 합의,협의매수에 응할 경우에는 보상금규모에 관계없이 전액 현금으로 보상받게 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최장 5년만기로 채권상환기간이 한정됐기 때문에 5년뒤부터는 상환부담이 새로 생겨나 채권발행 자체가 단기대책밖에는 될 수가 없고 ▲이자율우대·양도세감면 등으로 재정에도 결과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채권강제보상제는 자체가 지난달초 건설부가 처음 제출했던 개정안에는 들어 있지 않다가 관계장관회의에서 갑자기 추가돼었는데 사전에 충분한 검토없이 개정안이 마련되면서 한달동안 결국 네차례나 법안 내용이 번복됐고 앞으로도 국회심의·법적용과정에서 논란의 소지를 남겨놓게 된 셈이라고 할 수 있다.<민병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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