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이후」를 생각하자/전영기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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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자당 지구당들이 요즘 사전선거운동혐의가 짙은 당원단합대회를 잇따라 열어 말썽을 빚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대문을지구당(위원장 안성혁)은 2백17명의 「당원」들을 관광버스 5대에 싣고 충주호로 떠나려다 비디오까지 동원하며 극악스럽게 달려드는 민주당 사람들에게 걸려들어 곤욕을 치러야 했다.
새벽 노상에서 폭력일보직전까지 치달았던 이 단합대회에 대해 민주당측은 『통·반장과 민자당소속 서울시·구의원들이 전날밤까지 민자당 입당원서를 받으러 다니면서 주민들을 동원,유람관광시킨 것』이라고 비난했다.
민자당 지구당은 『당협의회장·관리장 등 핵심간부의 수련을 위한 자리로 모두 당원이며 사전선거운동과 무관한 당내행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석연찮은 구석이 적지 않다.
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60대 할머니가 「입당원서를 써주면 놀러 보내주겠다」는 민자당 권유를 받고 단합대회에 다녀온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리시지구당도 비슷한 때에 2천5백여명의 「당원」들을 시내로 골프장으로 불러 「가을맞이 당원단합대회」를 성대하게 치렀다. 인기여가수까지 초청한 「위로공연장」을 통·반장 조직을 통해 동원된 주민들이 가득 메웠다는 주장은 눈에 불을 켜고 감시에 나선 민주당측에서 나왔다.
선거운동기간이라는 법적인 개념이 없어진지는 오래다. 이미 지난 추석때부터 시작된 선물돌리기·음식대접하기·온천 목욕시키기·단풍관광 등은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지금까지 「일정한 재력」을 중요한 공천의 내부기준으로 삼아온 민자당이 이제 그렇게 해서 뽑힌 구의원,시·도 의원들을 아예 지구당부위원장으로 앉혀놓고 조직동원에 활용하는 예는 비일비재하다.
여의도 국회에서 여야가 돈안쓰는 선거법,정치자금법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2백24개 지역구로 나누어진 전국 곳곳에서 돈쓰는 사전선거운동이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회기중임에도 의원회관은 텅텅 비어 있고 지역에 내려간 의원들은 기업하는 친구등으로부터 울며 겨자먹기로 우려낸 돈을 펑펑 쓰고 있다.
그런 그들은 서울에 올라와 망국적 선거풍토를 개탄하는 두 얼굴을 보인다.
여야·정부·유권자 모두가 「선거이후」를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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