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실망 엇갈린 오페라무대|10월에 공연된 『리골레토』『토스카』『명랑한 과부』|제작자 예술적 안목이 작품수준 좌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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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질적 도약을 위해 변신의 폭을 가속화하고 있는 오페라계가 10월중 세편의 오페라를 무대에 펼쳐보였다.
서울오페라단의 『리골레토』(10월6∼9일 세종대)를 시작으로 KBS홀 개관기념공연인 한국오페라단 『토스카』(10월19∼22일)와 사단법인이 된 김자경오페라단의 레하르 『명랑한 과부』(10월29∼31일)다.
그간 아마추어급 오페라단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 1회 공연으로 문을 닫는가 하면 오페라단의 이름을 빌려 「국제적인」사업을 하는등 그 폐해가 심각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예술에도 사회발전에 따라 자연도태설이 유효한 탓인지 정리단계에 접어든 것 같다.
우선 세편의 작품을 통해 오페라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오페라제작자의 예술에 대한 안목과 의지가 관건임을 발견케 했다.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는 식의 오페라 풍토여서는 예술행위 자체가 심각한 도전을 받게된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이번 공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음악계내의 치부와 예술가로서의 양식미달 등의 고질적인 치부가 도려내져 말끔히 치유만 된다면 우리 오페라의 장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서울오페라단의 『리골레토』는 지금껏 이 단체가 보여줄수 있는 최상의 무대로 평가된다. 다만 기대에 못미친 출연진 선정이 작품의 성가를 떨어뜨린 요인이였다. 그러나 질다역의 박미혜와 리골레토역의 이재환이 명성에만 의존하려는 소프라노 이규도와 바리톤 최현수에 교훈을 안겨주었다.
오키스트라의 세련됨과 무대제작·미술에서 열성적인 작업태도가 진일보한 느낌을 갖게해 지속적 발전을 기대해 본다.
『토스카』공연은 KBS홀의 첫무대란 점과 조급한 공연일정을 감안하더라도 이해가 가지않는 「오페라 언어의 실종 현장」이었다.
맛과 향기가 달아나버린 썰렁한 음식을 대했을 때의 참담한 기분을 씻을수 없었다.
소품하나, 한걸음 한걸음에 최선을 다하는 성악가의 진실한 노력등 각양의 요소들이 하나의 톤으로 응집될때 오페라는 살아난다. 그런데 멈추어버린 조명, 경마하듯 템포만 좇아 푸치니의 색감을 상실한 오키스트라에서 가수는 「열림」의 상태가 될수 없지 않은가. 낮보다 더 밝은 3막에서 결코, 별은 빛나지 않았다.
이번 한국오페라단 공연의 결실이라면 오페라가 예술의 본질에 대한 이해 없이는 결코 제대로 공연될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킨 점이다.
마지막 공연으로 『명랑한 과부』는 모처럼 순수 한국제작팀에 의해 완성된 오페라로 상당한 공감을 안겨주었다. 파스텔조의 무대 색감과 조명의 조화가 돋보였고, 연출 김주경의 섬세한 감각이 부천시립교향악단을 지휘한 임혜정의 작품 해석과 긴밀한 융합을 이뤄 비극오페라와 또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그러나 명랑한 과부역의 메조소프라노 김신자와 파리 신사역의 테너 김태현이 이 오페라의 격조를 살렸을뿐 대체로 성악가들의 역량이 기대에 못미친 점이 아쉽다.
오페라 무대란 출연성악가를 포함한 모두의 음악정신이 결집되는 장이다. 알맹이와 상관없이 오페라라는 틀위에 군림해보려는 허튼 의식으로는 결코 오페라의 생명력있는 언어가 만들어지지 않음을 가슴깊이 심어준 의미 있는 공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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