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고농축 우라늄' 협력 왜 먼저 꺼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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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HEU 문제를 먼저 꺼낸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앞서 열린 코리아소사이어티 세미나에서도 HEU를 포함한 모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고 협력할 뜻이 있음을 시사했다고 한다.

한.미.중.러.일 등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의 HEU 프로그램의 신고에 대해 적잖이 걱정해 왔다. 그동안 북한이 HEU 프로그램의 존재조차 부인해왔기 때문이다. 북한이 왜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일까.

◆김정일이 결단 내린 듯=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략적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전략적 결단에는 두 가지 목표가 설정되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북.미 관계정상화에 속도를 내야할 필요성이 첫째 목표다. HEU 프로그램을 털어내지 않고는 북.미 관계 개선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그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이번 회의를 책임진 김 부상에게 HEU 프로그램 신고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지침'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부정적 이미지 씻어낼 목적도=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부정적 시각을 불식시키기 위한 '명분 축적용'으로 HEU 프로그램 공개를 들고 나왔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입장을 선회하기 했지만 미국은 2002년 이후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 수준까지 HEU 프로그램을 가동해 왔다"고 주장해 왔다. 주장의 근거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판단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2002년 10월 CIA의 정보를 들고 10월 북한을 방문했던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는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과의 회담에서 "HEU 프로그램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걸로 2차 북핵 위기가 불거졌다. 미국은 "북한이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파기했다"며 대북 중유 공급을 중단했다. 그러자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추방하고 본격적인 핵무기 제조에 나섰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한결같이 HEU 프로그램의 존재를 부인해 왔다.

한국 정보 당국은 "북한에 HEU 프로그램이 존재하나 핵무기를 생산할 수준이 아니다"고 판단한다. 4000개의 원심분리기를 1년간 가동해야 핵탄두 1개 제작 분량인 HEU 8kg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북한에 유입된 원심분리기는 20여 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일 위원장은 HEU 신고를 통해 북.미관계 개선과 함께 CIA 정보 분석의 왜곡 공개를 동시에 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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