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10년 숙적의 한잔 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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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결승 2국>
○ . 이창호 9단● . 창하오 9단

제2보(16~28)=1국이 끝나고 이창호 9단과 동생 영호씨, 그리고 창하오(常昊) 9단 부부는 대국장 근처의 중국 식당에서 가볍게 술을 한잔 나눴다. 창하오가 한 판을 이겼지만 아직 승부는 나지 않았고 이튿날은 휴일이라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들 네 명은 이창호가 중국에 오면 가끔 그렇게 만난다고 한다. 10년 숙적이면서(창하오 쪽이 일방적으로 지긴 했지만) 동시에 친구인 그들의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했다.

그런데 오늘 순하기만 하던 창하오가 사람이 변한 듯 초반부터 날카롭게 덤벼온다.

흑▲의 낯선 협공이 칼칼해 이창호 9단은 선뜻 손이 나가지 못한다. 삼삼에 파고들 수는 없는 곳. 그렇다고 중앙으로 뛰어나가 싸우기도 이상하다. 좌하나 우하가 급한 곳인데 이곳에서 다시 전선을 펼친다는 것은 기리(棋理)에도 역행한다.

그래서 16~22까지 가볍게 처리하고 24로 발길을 돌렸다. 흑이 두텁지만 백도 걸음이 빨라 잘 어울린 바둑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여기서 등장한 창하오 9단의 25가 다시금 백의 의표를 아프게 찌른다. 조한승 9단이 "좋은 감각. 응수가 까다롭다"고 말한다.

'참고도'처럼 낮게 협공한다면 백은 2~12로 부드럽게 중앙으로 진출할 수 있다. 흑의 두터움을 지우며 쉽게 자리 잡게 되는 것. 한데 25로 높게 두자 불과 한 칸 차이건만 백의 응수는 지독히 어려워졌다.

이 9단은 시간을 물쓰듯 하며 고심하더니 26으로 붙이고 28로 달려나간다. 26은 약간 악수. 그러나 흑이 A로 끊어올 때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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