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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중도의 이상과 환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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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속절없는 민심 이탈 앞에 사분오열하고 있는 열린우리당(또한 그 계열의 정파)도 회심의 뒤집기용 이념 카드로서 중도통합을 내세우고 있다. 그동안 내건 진보개혁 강령의 구매력 실종을 인정하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과 사안마다 날카롭게 맞부딪히는 한나라당(또한 그 연대세력)도 공식적으로는 중도통합론을 표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구의 잔재를 털어버리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 궤변과 식언(食言)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현실정치 불변의 공식이지만, 한 표가 중요한 상황에서 지지층의 외연을 최대한 넓히기 위해 정치권이 사력을 다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데가 있다. 부동층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인 것이다.

그러나 지식인 사회에서 중도담론이 급격히 부상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여기에는 복합적 측면이 있다. 진영 논리로 황폐화된 지식사회의 상처를 치유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소통이 이뤄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순기능이 있다. 순수의 미명으로 치장한 극단의 담론들이 막아버린 대화의 물길을 틀 수 있다는 것이다.

원래 중도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중(時中)과 중용을 이상으로 삼는 것이므로 이론과 실천에서 절대적 정답을 강변하지 않으면서 역동적 균형 상태를 지향한다. 개인이건 사회건 진정한 중도의 이상이 성숙함의 잣대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중도가 확장되고 있다면 우리 사회는 빠르게 일보 전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도담론의 갑작스러운 득세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다. 권력 쟁취와 선거 승리라는 목표를 위해 전략적으로 행위를 하는 현실 정치인과, 원칙과 합리성을 생명으로 해 일관되게 행동하는 지식인 사이에 중대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선명한 것을 선호해 온 한국 지식사회의 풍조 때문에 그간 중도주의가 회색분자나 기회주의와 쉽게 동일시돼 온 역사를 감안해도 중도의 돌연한 유행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현재의 새로운 중도담론을 선도한다는 '변혁적 중도주의' '강한 중도', 그리고 '비빔밥 중도론' 등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대표적 진보 지식인들이 새삼스럽게 중도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누구든지 급변하는 현실의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하기 위해 변화를 도모하는 것은 자연스러우며 때로 바람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보를 자처한 참여정부의 무능과 실패가 불러온 한국 진보의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책으로 만약 중도라는 상징적 외피가 '동원'되고 있다면 그것은 진보의 미래를 위해서도 썩 현명한 일로 생각되지 않는다. 정치의 논리와 지식의 논리는 준별돼야 하기 때문이다.

권력의지에 매몰된 정치인과 달리 지식인들은 자신의 입장 변화를 정합적으로 설명하고 이성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사에 드문 한 세대만의 압축성장과 돌진적 변환을 기록한 한국 사회는 '열려 있으면서 자기중심을 잡은' 지식인의 존재도 희유(稀有)한 것으로 만들었다. 모든 것이 흔들리며 떠다니는 삶의 공간에서 인식과 실천의 중심을 잡는 것은 그렇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항상적 정치 과잉 때문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의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치공학으로부터 독립된 합리적 생활세계를 굳건히 지키는 데 있다. 블랙홀 같은 현실정치의 배리(背理)는 끊임없이 지식의 논리를 식민화하려 한다. 중도담론이 그 도구로 사용될 때 중도의 이상은 환상으로 타락하고 만다.

윤평중 한신대·사회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