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 경제개혁안/경제위기 탈출 「벼랑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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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식량부족등 한계 “개혁 못늦춘다” 판단/군창설·독자적 화폐 발행 검토도 시사/실패땐 연방붕괴·정치생명 종지부 불가피
보리스 옐친 소련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 28일 심각한 경제난 타개를 위해 경제개혁을 독자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밝혔으나 그 결과 소 연방붕괴는 이제 돌이킬 수 없게된 것처럼 보인다.
옐친 대통령이 이날 공화국 임시 인민대의원대회에 참석해 밝힌 경제개혁안의 내용은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가격자유화 ▲적자상태의 국영기업·농장의 민영화 ▲1만개가 넘는 중소기업의 반수 이상을 3개월내에 민영화하는등 급진적인 시장경제원칙의 도입등이다.
지금까지 논란을 벌여왔던 국유재산의 사유화를 빠른 시일안에 과감하게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사회주의경제에 자본주의,혹은 시장경제를 도입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기존의 국유재산을 어떻게 분배하느냐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국유재산불하의 형식이 될 정부의 특혜를 나누는데 어느 집단 또는 누가 얼마나 차지하느냐는 첨예한 이해대립을 가져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러시아공화국 인민대의원대회가 8월 보수파 쿠데타실패이후 보리스 옐친 대통령 및 공화국내각과 사사건건 시비를 벌인 것도 따지고 보면 그같은 이해대립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반 실라예프 전러시아공화국 총리가 연방내각총리로 자리를 옮겨 총리 공석이 된지 한달여가 넘도록 방치된 이유도 그같은 이해대립의 와중에서 정치적으로 희생되지 않겠다는 정가일반의 몸조심이 한몫했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따라서 옐친 대통령이 이날 경제개혁안과 자신의 총리겸임의사를 밝히면서 경제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요구한 것은 각 정파가 대변하는 집단간의 이해대립을 억누를 수 있는 비상대권을 요구한 것이다.
한편 옐친 대통령이 이날 밝힌 국정운영계획에는 연방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이 강하게 시사되는 항목이 포함돼 있다.
우선 옐친 대통령은 다음달 1일부터 연방외무부등 70개가 넘는 연방기구에 대해 재정지원을 중단하고 ▲방위비분담을 삭감하는 한편 ▲다른 공화국에 수출하는 석유·석탄등 각종 원자재에 국제시장가격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옐친 대통령은 이와 함께 독자군창설·독자화폐발행도 적극 검토하고 있음을 강력 시사했다.
물론 루블화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앞세우고 있고 다른 공화국들이 그같은 조치를 계속 취할 경우라는 단서를 달고 있지만 이번 개혁안의 맥락으로 볼때 독자화폐발행 등은 시간문제라는게 일반적 전망이다.
옐친 대통령은 지난 6월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된뒤 연방유지와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민주개혁운동파와 민주러시아파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려왔다. 옐친은 이른바 「바람」의 지지를 받았을뿐 의회내에 독자적 세력기반이 없었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옐친 대통령은 대통령당선 초기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전외무장관등 전공산당간부출신이 이끈 민주개혁운동의 연방유지 주장에 보다 경사돼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모스크바에서 발생,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식품부족 항의 폭동 등은 연방유지를 위해 독자적 개혁을 더이상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하게 한 것 같다.
이에 따라 옐친대통령은 최근 탈연방을 주장하는 민주러시아파 인사들과 연쇄접촉을 갖고 그들의 국정운영방안을 전폭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러시아파는 행정권강화를 배경으로 경제부흥을 위한 개발독재가 불가피하고 연방유지를 위해 러시아가 더이상 희생돼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며,이번에 발표된 국정운영계획으로 볼때 옐친 대통령은 이들의 선택을 받아들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옐친 대통령의 이같은 선택이 러시아공화국 의회에서 전폭적으로 지지를 받을지는 아직 미지수며 옐친 대통령의 독주를 막을 보조장치를 강구하는 현실적 타협이 이뤄지면 이번 개혁조치의 성공도 극히 불투명해진다고 보지않을 수 없다.
옐친대통령의 이번 발표가 경제개혁의 구체적 조치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그같은 실패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하는 대목이다.
결국 옐친 대통령은 자신에게 전폭적 지지를 보내주었던 러시아국민들이 「옐친타도」를 외치는 경제적 위기속에서 「벼랑의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소 연방의 해체는 물론 자신의 정치적 운명까지 재촉할지도 모를 승부수라 할 수 있겠다.<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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