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선거운동/1인당 백만원 해외 관광도(정치와 돈:7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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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부 이미 수십억 사용설… 내사약효 지속 의문
14대총선을 향해 뛰는 여야 후보지망생들의 과열된 사전선거운동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면서 사전선거운동의 양태와 비용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정부·여당이 사전선거운동행위를 원천봉쇄하겠다며 행정력을 투입하고 중앙선관위도 사례수집에 나서고 있고 검찰도 과도한 사전선거운동혐의를 내사하고 있어 사법처리대상의 선정기준과 범위에 대해 정가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여당의 이같은 서슬퍼런(?) 분위기 때문에 전국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던 사전 선거운동은 『우박은 피하자』는 후보지망생 들의 몸조심으로 일단 움츠러드는 기미.
그러나 선거일자가 가까워질수록 되살아날 수밖에 없어 「사정약효」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지난 여름 의원들의 귀향활동을 시발로 본격화된 사전선거운동은 대체로 ▲유권자 대상의 선심관광 ▲국회견학 ▲수련대회 및 체육대회 ▲고급 음식점에서의 향응제공 ▲각종 단체 주관 행사에 찬조금 출연 또는 식·음료제공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중에서도 가장 많은 경비가 소요되면서 후보 지망생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 무료 관광. 선거때 관광주선은 생색도 나지 않는데다 불법선거운동으로 적발될 위험부담이 따르는데 비해 가을철 「단풍놀이」를 명분으로 한 관광주선은 생각은 있으나 형편이 못돼 관광을 못떠나는 부녀자들에게 생색도 낼 수 있고 불법운동으로 적발될 부담이 없어 실익이나 효과면에서 그만이라는게 공통된 얘기다.
단풍관광은 대부분 당일치기가 보편적으로 1인당 1만원에서 1만2천원 정도가 소요된다는 것. 점심도시락이 3천∼4천원,음료와 약간의 주류비가 2천원,수건등 기념품이 2천∼3천원,입장요금등 기타 경비가 2천원등 1인당 최소 1만원 이상이 소요된다.
성수기인 가을철에는 단거리는 20∼25만원,장거리는 30만∼35만원의 버스대절료와 고속도로통행료 및 모집책 활동비가 추가되므로 40명이 합승하는 버스 1대에 평균 1백만∼1백20만원꼴.
1천명만 관광시켜도 25대의 버스가 필요하므로 소요경비는 2천5백만원선.
특수한 경우이긴 하지만 해외관광을 알선하는 신종수법도 부쩍 늘고 있다. 현역의원들중 상당한 재력을 지닌 일부 의원들이 개발한 해외관광은 광역의회선거때 고생한 당직자들에 대한 약속이행차원이라고 당사자들은 변명하고 있지만 사실은 14대총선을 겨냥한 조직다지기에 목적을 두고 있어 사전선거운동의 혐의를 면키 어려운 실정이다.
해외관광은 보통 비용이 가장 적게드는 동남아코스를 택해 5박6일 정도의 일정으로 짜여져 있는데 20명에서 60명이 그룹으로 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경우 1인당 최소 1백만원의 경비가 들어가지만 당사자들은 효과만점이라고 평가.
대구·경북지역의 L의원이 지난 9월 지구당요원 60명을 4박5일간 동남아 여행을 시킨 것을 비롯해 이 지역의 K씨,충남의 L의원,수도권의 O의원이 해외여행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구·경북의 L의원은 『30여명의 의원이 알게 모르게 해외여행을 주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실토하고 있다.
국회견학은 현역 의원들이 애용하고 있지만 때로는 큰 부담도 된다. 지역구 주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의정활동을 홍보하고 국회를 견학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당원들의 나들이 서비스이기는 마찬가지.
국회견학의 비용도 당일치기 관광비 만큼 들어 1인당 1만원은 필요하다는 것이 여야의원들의 얘기.
금년 9월까지 국회를 참관한 국민은 1천5백67개 단체 12만2백88명으로 집계되고 있는데 월별로는 4월이 2만2천,5월 3만4천,6월 2만,7월 5천,8월 9천8백,9월 1만1천여명이 각각 참관한 것으로 나타나있다.
따라서 순수한 방청객·수학여행단 등을 제외하더라도 10만명이상이 현역의원들의 주선으로 국회를 다녀간 셈이어서 이 비용만도 10억원이상이 들어갔다는 계산이 나온다.
유권자들을 고급 뷔페등으로 초청,음식을 접대하며 출마의사를 밝히는 수법은 가장 보편화된 사전선거운동.
기업인 L씨는 지난 8월말부터 강남지역 주부·노인들을 20∼30명단위로 식사대접했다하여 물의를 빚고있다.
주로 강남의 대형 중국음식점에서 점심 또는 저녁식사를 제공하며 L씨 또는 부인이 나서 지원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음식값은 평균 1인당 1만∼2만원선. L씨는 사전선거운동 단속엄포가 겹치자 활동을 중단했다는 소문.
결국 단풍관광·수련회·음식제공·국회견학 등을 한차례씩 했다고 할때 의원 또는 출마희망자들은 수천만원에서 1억원대 이상을 사전선거운동 비용으로 지출한 것으로 추산된다.
심지어 전국 모선거구의 경우 벌써 수십억원 사용설이 현지에서 나돌 정도로 혼탁한 곳도 있다.
사전선거운동 사례로 선관위에서 지적됐거나 경쟁자 상호간 고발사태가 난 서울 영등포을·부산진을·전남 나주·경북 의성이 모두 여권인사들과 관련된 사실을 감안할때 돈안드는 깨끗한 선거풍토 조성의 성패는 여당의 집안단속 여부에 달려 있는 것 같다.<문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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