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지공화국」 떠나 「고향공화국」 찾는다/소에 “국내 엑서더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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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거주이전 자유따라 대이동 예고/일자리·집없어 생계엔 속수무책/카자흐공서만 적극적으로 환영
소련이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해온 거주허가증제도를 내년 1월1일부터 철폐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국내 난민」 문제가 소련의 또다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난민이란 「객지 공화국」에서 살아오다 최근들어 「고향 공화국」이 독립하는 바람에 졸지에 외국인처럼 돼버린 사람들중 다시 고향 공화국을 찾아나선 사람들을 가리킨다.
프라우다지등 소 언론에 따르면 지난 9월 현재 2억9천만 소련인중 8천여만명이 조국도 외국도 아닌 객지 공화국에 살고 있으며 그중 최소 1백50만명이 이미 국내 난민화했다. 이 숫자는 거주이전이 자유화되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늘어날 것이며,특히 공화국간 민족갈등이 극한 상황으로 치달을 경우 대혼란이 초래되리란 전망이다.
지난 88년 2월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 발생한 유혈 민족충돌 이래 4년째 준전쟁 상태에 있는 아제르바이잔 공화국과 아르메니아 공화국이 이미 이를 증명하고 있다. 샤키르 케리모프 아제르바이잔 난민문제위원장은 『88년 사태이후 아르메니아내 1백72개 아제르바이잔인 거주 마을이 모두 파괴됐으며 23만8천5백24명이 쫓겨나 이제 아르메니아에는 단 1명의 아제르바이잔인도 남아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아제르바이잔거주 아르메니아인 35만명도 「조국」으로 피신했음은 물론이다.
이와 함께 극도로 악화된 경제사정 때문에 조국을 찾아온 난민문제도 심각하다. 각 공화국들은 이들을 반길 수도,그렇다고 다시 쫓아낼 수도 없는 형편이다.
러시아 공화국의 경우 아직 15만명에 불과한 난민조차 부양할 능력이 없어 쩔쩔매고 있다.
지난 9월 독립한 리투아니아등 발트해 3국으로부터 귀국한 사람이 대부분인 이들은 주로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구 레닌그라드)등 대도시 주변에 진을 치면서 정착을 꾀하고 있으나 취업은 커녕 자녀들의 취학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A 멜니코프 모스크바시 난민위원장은 『모스크바 일대 난민 1만2천명을 마을회관·소년단 캠프·연금생활자 회관등 47개소에 분산수용하고 1인당 1백50루블의 생활보조금과 간단한 생활용품을 한차례 지급했을 뿐』이라며 『앞으로 들이닥칠 난민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라고 실토하고 있다.
그런데 빠져나간 난민들이 비워둔 집이나 일자리가 새로 들어온 난민들에 의해 채워지지 못하는 것은 빈집은 당국이 환수,재원확보를 위해 돈을 받고 팔고 있으며,빈 일자리는 각 기업체·관공서들이 앞으로 있을 감원작업을 위해 그대로 놔두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카자흐 공화국만은 카자흐인의 귀국을 적극 환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전체인구 1천6백50만명중 카자흐인은 5백만명도 안되는데 반해 러시아인은 6백70여만명에 달해 의회선거 등에서 러시아인이 득세할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인구 4백34만명의 몰다비아 공화국은 50여만 러시아인이 주로 공무원·교사·기술자등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어 이들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갈 경우 일시에 국가조직이 마비될 실정이다.
이밖에 1930년대말 극동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이주당한 고려인을 비롯,타타르족·부랴트족등 수많은 소수민족들도 작게는 자치권확대에서부터 크게는 독립국가 건설을 외치고 있어 앞으로 소련 국내난민 문제는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띨 전망이다.
프라우다지는 국내 난민문제야 말로 자유수권 공화국 연방으로의 재탄생을 앞둔 새로운 소련의 최우선적과제가 될 것으로 예고하고 있다.<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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