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TV 안테나가 부활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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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1970년대 케이블TV가 등장하자 소형 실내 안테나는 사라져갈 운명인 듯했다. 한때 미국인 생활에서 TV 시대의 부흥을 예고했던 옥외 안테나의 운명도 같아 보였다. 그러나 아날로그 제품의 쓰레기더미로 가는 길에 희한한 일이 발생했다. 신세대 실내·옥외 안테나로 고화질(HD)TV 방송의 수신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것도 공짜로 말이다.

케이블·위성TV 기술로 퇴출 위기에 몰렸던 안테나가 디지털 시대에서 가장 유망한 첨단기술 서비스 중 하나인 HDTV 덕분에 소생한다니 참으로 놀랍다. 안테나는 허공에서 정규 지상파 방송 신호를 포착하듯이 HD 채널도 붙잡아낸다. 게다가 케이블이나 접시형 위성 안테나를 설치할 필요가 없고, 시청료도 없으며, 케이블 방송사 기술자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마치 옛날로 돌아간 듯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실내·외 안테나(18~150달러)가 훨씬 더 선명한 화면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온라인 판매업체 SolidSignal. com의 소유자 제리 채프먼은 “고객의 90% 이상이 HD 방송을 보려고 안테나를 구입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큰 단점도 있다. 안테나는 오직 지상파 방송만 수신하며, 케이블 채널은 포착하지 못한다.

그러나 안테나 제조업체들은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세인트루이스의 터레스트리얼 디지털, 아이오와주 벌링턴의 와인가드, 뉴욕주 하우페이지의 오디오복스 같은 회사들의 안테나 매출이 급증 추세다.

터레스트리얼 디지털의 매출은 2003년 창사 이래 연간 2배씩 증가해 지난해에는 140만 달러의 매상을 올렸다고 창업자 리처드 슈나이더는 말했다. “취미 삼아 시작한 사업이 지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그는 처음에는 수제 안테나들을 트럭 짐칸에 싣고 다니며 팔았다고 한다.

와인가드 측은 일단 소비자들이 시대착오적인 안테나를 통해서도 HD 영상 수신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안테나를 구입하려는 사람이 더 늘어나리라 믿는다. 와인가드의 지상파 제품 판매 책임자인 애런 잉버그는 “현재 우리 회사는 그런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리는 일에 주력한다”고 밝혔다.

TV 사업을 벌이는 기업 간의 충돌도 안테나 매출 증가에 일조했다. 싸움은 거대 케이블 방송사인 차터 커뮤니케이션스와, 여러 도시에 TV방송사를 소유한 지상파 방송사 벨로 코프 간에 벌어졌다. 지난 1월 벨로 코프 측은 자사에서 제공하는 HD 영상신호 이용료를 차터 커뮤니케이션스가 추가로 지불하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경우 자사 TV방송에서 제작되는 HD 프로그램의 재(再)배급권을 박탈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렇게 될 경우 세인트루이스(벨로 코프는 이곳에 있는 CBS TV 가맹사를 소유했다) 같은 도시의 시청자들은 미식축구 수퍼보울 경기를 고화질 영상으로 보지 못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터레스트리얼 디지털의 슈나이더는 세인트루이스에서 안테나 판촉 행사를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터레스트리얼 디지털 측은 현지의 라디오 방송 광고에서 가장 먼저 오는 고객 200명에게 안테나를 무료로 증정하겠다며 “월 사용료 없이 최상의 HD 영상을 즐기세요”라고 선전했다.

슈나이더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대소동이 일어났다. 공짜 판촉품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토끼 귀 모양의) 소형 실내 안테나는 엄청난 수퍼보울 대회의 흥행을 성공시켰다.

사실 오늘날의 안테나는 그다지 토끼 귀와 닮지 않았다. 크기는 작아지고 성능은 훨씬 더 좋아졌다. ‘보우타이’라는 상표명의 한 실내 안테나는 “거의 철망처럼 생겼다”고 디트로이트 교외에 자리 잡은 SolidSignal. com의 채프먼은 말했다.

액자 테두리처럼 생긴 안테나도 있다. 그러나 안테나의 기본 메커니즘은 여전히 똑같다. “안테나는 1960년대 이래 디자인의 변화가 거의 없는 몇몇 소비자 가전제품 중 하나”라고 슈나이더는 말했다.

슈나이더뿐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소비자가 안테나를 통해 가장 선명한 HD 영상을 본다고 확신한다. HD 영상 신호는 일반적인 TV 영상 신호보다 부피가 훨씬 더 크기 때문에 통신회선의 용량을 독차지한다. 그래서 케이블·위성 TV 사업자들은 HD 영상 신호를 “압축”하거나 압착한다(지상파 TV 사업체들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중론은 영상 신호를 지나치게 압축하면 화상의 질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누군가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LA의 변호사 필립 코언은 지난해 9월 미국 최대 위성 TV방송 사업자인 디렉TV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코언은 “디렉TV 측의 선전과 달리, 위성 TV를 설치해도 고화질 화면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디렉TV 측은 그런 소송은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코언은 단순히 실내 안테나만 설치해도 HD 화면이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자신은 산간지대에 살기 때문에 토끼 귀 안테나(rabbit ears)가 도움이 안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행운의 부적으로 알려진 ‘토끼 발’(rabbit’s foot)은 어떨까?

JOHNNIE L. ROBERT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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