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십자가 합창단 '마태수난곡' 일본 공연 가보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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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필하모닉과 성십자가 합창단의 공연 리허설이 열린 24일 일본 요코하마 미나토 미라이홀. 지휘자 로데리히 크라일레(51)가 발성연습을 위해 합창단 전체를 무대 뒤로 불렀다. 8~18세의 합창단원들이 모인 무대 뒤는 시끌벅적해졌다. 청바지 차림의 소년들은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잡담을 나눴고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발성연습을 했다. 일본 공연의 기획사 관계자는 "연습이 없을 때 틈만 나면 일본의 비디오 게임 전시장에 드나드는 아이들"이라고 이들을 소개했다.

2시간 후 본무대에 오른 소년들의 자세는 완전히 바뀌었다. "나의 죄 많은 영혼이 당신의 짐을 짊어져야 했다""마음의 고뇌를 그분의 뜻에 맡기라" 등 경건한 가사 소년들의 미성을 타고 나왔다. J.S.바흐의 '마태수난곡'은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3시간 동안 연주됐다.

마태수난곡은 예수가 죽임을 당하기까지의 이야기 '마태복음'을 독창자 5명과 합창단.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대곡이다. 2004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토마스합창단의 내한 전곡연주에서 적지 않은 한국 관객들이 눈물을 흘린 일화로도 유명하다. 특히 제자 베드로가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부인한 뒤 나오는 아리아 등은 종교적.음악적 완성도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심오하고 종교적인 음악을 드레스덴의 소년 합창단 69명은 특유의 안정감 있는 소리로 소화했다. 크라일레는 "우리 합창단의 소리는 로맨틱하면서도 기반이 튼튼하다"고 자신했다. "1945년 독일 대공습으로 합창단원 11명이 사망해 와해됐다. 하지만 이후 음악을 중심으로 재건한 합창단이기 때문에 연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라는 설명이다.

음악 칼럼니스트 한정호 씨는 "이 합창단은 지역주민의 음악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유지된다"고 말했다. 800년 역사의 합창단은 드레스덴의 6~9세 소년들을 뽑아 단원으로 훈련한다. 이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음악뿐 아니라 생활방식.예절 등을 배운다. 악기연주.음악이론부터 철학까지 교육도 철저히 받는다. 전통적 라이벌인 라이프치히 성토마스합창단과 1년에 두 번씩 축구경기를 벌이기도 하는 평범한 남자아이들이다.

이들은 꼭 성악가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태수난곡 전곡 공연 등을 통해 사고가 훌쩍 성장한다. 일본 공연에서 솔리스트로 출연한 토비아스 베른트(바리톤)도 이 합창단 출신이다. 그는 10년 전 일본을 찾았을 때 단원 중 하나였다가 이번 공연에서는 유다.베드로 등의 역을 맡았다.

이들이 들려주는 마태수난곡은 일본 순회연주를 마친 뒤 다음달 2일(대전문화예술의전당)과 4일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된다. 3일에는 같은 연주단체가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무대에 올린다. 일본 공연장은 지휘자가 리허설 도중 "오르간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미흡한 면이 있었다. 합창단의 칸토르(음악감독)이기도 한 그는 "한국의 공연장은 좋은 소리를 냈던 걸로 기억한다"며 내한 연주에 기대를 보였다.

요코하마=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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