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뭄 기업 「특혜」미끼 유혹/정치헌금사기 어떻게 이루어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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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고위층 앞세우자 등기·인감선뜻/한탕노리는 브로커 2만명 활개
2일 검찰에 적발된 정치헌금조건 특혜대출 위장사기단사건은 일부 기업들이 여전히 특혜의 단맛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허약한 재무구조에 허덕이고 있다는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무궁화유지·아남산업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은 물론 경주·수안보·춘천등지의 유명관광호텔·병원·백화점등 무려 33개기업체가 4조원규모의 차관자금을 대출한다는 꾐에 맥없이 빠져들었다는 것은 이같은 문제점을 반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들 피해기업들은 최근 은행대출심사가 까다로워진 틈을 타 기업당 80억∼7천억원의 자금을 10년거치 10년상환의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접근한 사기단에 순순히 인감증명·부동산등기 서류등 관계서류 일체를 넘겨준 것으로 수사결과 드러났다.
이들 기업들은 대출자금의 25%를 정치자금으로 헌납해야 한다는 공제조건에도 불구하고 선뜻 회사중요서류를 넘겨주고도 『청와대사업을 믿지 못하느냐』는 사기단의 위협에 대출독촉조차 못한채 전전긍긍해 왔다는 것이다.
◇사기수법=구속된 김광남씨등 9명은 6월부터 9월까지 정부가 정치자금모금을 위한 비밀조직을 가동하고 있는 양 각기 정치자금모집 담당관·차관서류 점검관을 사칭한뒤 함께 구속된 김덕근씨등 모집책을 통해 대상기업과 접촉해왔다.
이들은 피해기업들을 속이기 위해 면접에 앞서 보안각서를 제출받고 점조직연락을 취하는등 비밀조직행세를 해왔다.
또한 빌린 외제고급승용차·호텔 장기투숙을 통해 신분을 과시하면서 서류제출을 위한 면담때에도 고위층을 사칭한 조직원의 뒷모습만을 대면시켜 피해자들을 입도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피해 기업인들에게는 일본대장성발행 1천억엔 및 5백억엔권 환부금잔고증명서를 위조,제시하고 대출관계서류가 은행에 보관중인양 은행발행 보호예수증서를 보여주어 차관대출을 믿게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기행각을 통해 E그룹 2세인 이모씨에게 전직 고위층의 부동산을 파는 것처럼 속여 선금으로 10억원권 당좌수표를 받아냈는가 하면 기업들로부터 부동산담보제공용 관계서류를 넘겨받아 자신들이 설립하려 한 가칭 한국공산품유통(주) 은행대출용으로 이를 이용하려다 검찰에 적발됐다.
◇문제점=검찰에 압수된 김광남씨의 메모 「로카(브로커)24시」에는 『한건만 성사되면 5대후손까지 팔자 늘어진다』고 적혀 있는가 하면 『2만명의 일선 로카들이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는 로카업무에 뛰고있다』고 되어 있어 이들의 한탕주의 심리를 엿보게 했다.
구속자들에 따르면 이같은 일확천금의 꿈에 젖어 영등포·청량리일대의 다방등지를 무대로한 현역 브로커들만도 5천여명에 달하며 1∼2%의 성공률에 기대를 건 제2선의 브로커 조직은 무려 2만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 브로커들은 정권교체시기등 어수선한 사회분위기를 십분 활용,조직간의 정보교환·협조관계를 통해 그럴듯한 「바람」을 잡아 피해자를 현혹한다는 것.
특히 이들 사기단은 이번사건에서 나타난 것처럼 특혜심리가 만연된 일부 계층을 범행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사회 전반에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최근 잇따라 검찰에 적발된 기부금 입학사기·고위층 빙자사기 등은 땀흘린 대가로 성과를 얻기보다 단번에 이를 이루려는 피해자들의 심리가 결탁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는 검찰의 지적을 우리 모두 곱씹어 봄직하다 하겠다.<권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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