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은 탈당하고 장관들은 남고, 중립내각 맞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기로 했다. 이를 계기로 국정이 정치 공방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안정된 기조를 되찾고, 연말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발언을 보면 일부에서 우려하듯 위장 결별에 그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노 대통령은 임기 말 대통령 탈당 관행을 "우리 정치의 구조적 문제, 잘못된 정치 풍토"라고 비판했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탈당 요구는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을 막으려는 야당의 자구책이었다. 노 대통령이 왜 그런 전철을 밟아야 했는가. 불행히도 임기 말 개헌 주장 등으로 정치적 중립 의지를 가장 의심받고 있는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정말 초당적 입장에서 국정과 선거를 관리하기 위해 탈당한 것이라면 중립내각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한명숙 총리만 열린우리당으로 돌려보내고 나머지 정치인 장관은 당적만 버리고 그대로 유임시키겠다고 한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당적도 버리지 않겠다고 한다. 윤승용 청와대 대변인은 "선거에 관련된 부처 정도만 중립적 인사로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데 정말 궁색하다. 선거관리 주무장관인 행정자치부 장관의 당적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장관은 국정 전반을 다루는 국무위원들이다.

그뿐이 아니다. 청와대 특보단 7명 중에도 이해찬 전 총리 등 4명의 열린우리당 사람이 버티고 있다. 이별을 통보하는 자리에서도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의 성공을 기원하고, 당 지도부는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면서 탈당이 무슨 큰 사건이나 되는 양 요란을 떠니 뭔가 다른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노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한 것은 한나라당이 아니라 열린우리당이다.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벗어버리고 눈속임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얄팍한 의도다. 노 대통령의 탈당이 열린우리당의 정권 재창출을 위한 위장 결별인지 아닌지는 앞으로의 처신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탈당을 했다면 최소한 중립 의지는 보여 주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