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임싸다" 7백업체 현지진출|신발류등 작년1억불어치 역수입|경쟁안돼 국내 중소업체 도산우려|동남아산 한국상품 "밀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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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때 세계적 OEM(주문자 생산방식) 생산기지로 각광을 받았던 한국시장에 동남아산 역수입상품들이 밀려오고 있다.
그동안 높은 임금인상과 인력난을 피해 중저가품 생산업체들이 임금이 싼 동남아쪽으로 생산기지를 옮기거나 동남아 기업들에 하청을 주어 현지에서 만든 생산품을 국내로 역수입하는 것이다.
이런 동남아산 역수입상품을 소비자들이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모두 「MADE IN KOREA」상표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동남아산 OEM상품의 역수입을 늘리고있지만 이를 감추고 있다. 소비자들이 「동남아산=값싼저질」로 인식하고 있어 생산지를 표시하면 아예 팔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업계는 지난해 인도네시아·태국·말레이시아등 동남아 6개국으로부터의 수입액 47억달러 가운데 적어도 2.5%인 1억1천만달러(8백억원)정도를 이런 역수입품이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역수입은 섬유·의류·신발·전화기·봉제완구등 중저가품이면서 노동집약 상품들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지만 최근에는 고급신사복등 고가품에까지 미치고 있다.
유명 중저가 의류메이커인 A사의 신촌판매대리점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된 바지·니트·점퍼가 팔리고 있다. 가격은 1만∼1만5천원대가 대부분. 「MADE IN KOREA」란 상표를 달고 국산제품들과 섞여 팔리기 때문에 소비자는 물론 대리점 주인들도 어느 것이 국산이고 어느것이 인도네시아산 역수입품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A사본사에서는 알고 있겠지만 회사측도 『우리는 역수입제품을 취급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회사는 올들어 8월말까지 중국과 동남아에서 3백만달러어치의 의류 완제품을 수입했다.
『설사 역수입을 했더라도 같은 원단에 국내생산품 만큼 품질관리만 제대로 하면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는 회사측 관계자는 『만약 동남아산 역수입제품이 섞여 팔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같은 브랜드의 국산품까지도 동남아산으로 매도당해 장사는 끝』이라고 털어놓았다.
서울 남대문·청계천시장에서 팔리는 의류나 신발·전자계산기중에도 역수입품이 상당수 끼여있다.
상인들은 『서로 말은 않지만 저가품은 중국과 동남아산 순수 수입품이, 중저가는 동남아에서 생산된 국산브랜드의 OEM 제품이 급속도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주택지를 돌며 헐값에 파는 의류나 신발은 거의 모두 동남아·중국산이란게 상인들의 말이다.
부산의 컨테이너 부두에는 유명신발수출업체인 B사의 컨테이너가 눈에 띈다. 수출을 위해 선적을 기다리는 컨테이너가 있는가하면 하역되는 컨테이너도 있다.
같은회사 제품이지만 하나는 국내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보내는 수출품이고 다른하나는 동남아에서 주문 생산돼 국내로 들어오는 역수입품이다. 『아직 시험단계입니다. 미국등지에서 회사브랜드 이미지가 뿌리를 내려 고가품은 계속 국내에서 생산하지만 중저가품은 떨어져가는 경쟁력만회를 위해 아예 생산기지자체를 동남아쪽으로 옮길 예정입니다. 이중 일부가 국내로 들어오는 셈이죠. 아마 2∼3년만 지나면 국내에서 팔리는 중저가 신발은 대부분 동남아산 역수입품이 차지할 것입니다.』 B사 관계자의 전망이다.
최근 부산지역의 중소신발업체가 잇따라 도산한 것도 저가품 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에, 중저가시장에서 역수입품에 밀려났기 때문이란게 업계의 분석이다.
역수입품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이를 수입하는 방법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동종제품수입이란 여론의 비난을 피하고 소비자들에게 동남아산이란 원산지를 감추기 위해서다.
A사의 경우 제3자의 수입업체를 내세워 인도네시아로부터 자사브랜드를 억수입하고 있다.
B사는 동남아 하청업체들로부터 완제품을 수입하지 않는다. 대신 신발의 가죽·고무밑창을 거의 완성된 형태로 수입한다. 이를 자동화된 접착기계에 밀어넣으면 자사생산품과 똑같은 제품이 되어 국내시장에서 팔린다.
이럴경우 고무·가죽은 신발과 세번(관세품목 분류번호)이 달라 동종제품 수입이라는 비난을 피할수 있다.
의류업체인 C사는 통관때까지는 외국원산지의 라벨이 붙어있으나 판매할때는 아예 라벨을 떼어내고 국산라벨을 붙여 국산 중저가 의류로 둔갑시킨다.
관세청은 수입방법이 이처럼 교묘해 아직 동남아산 역수입에 대한 통계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는 지난해만해도 1억1천만달러정도, 올들어서는 역수입이 더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상품역수입은 보통 두가지로 나뉜다.
우선 해외 현지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국내로 들여오는 것이 있고 다른 하나는 외국업체에 하청을 주어 수입하는 OEM방식이 있다. 국내업계가 처음으로 역수입한 것은 지난 88년 금성사가 미국 헌츠빌 공장에서 26인치 이상의 대형 컬러TV를 도입하면서부터다.
그러나 본격적인 역수입은 89년말 동남아산 제품으로부터 시작됐다.
처음에는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동남아에서 생산, 제3국으로 수출하거나 현지판매가 동남아진출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가운데 일부가 국내로 역수입되기 시작하다 노동력부족과 높은 임금인상으로 국산 중저가제품이 국내시장에서 자리를 잃자 역수입이 점차 본격화되고 있는것이다.
일본은 70년대 말부터 동남아산 제품의 역수입을 시작해 89년에는 동남아로부터의 전체수입 2백17억달러 가운데 23.4%인 51억달러를 역수입이 차지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일본대장성).
일본시장에서는 동남아산 역수입제품이 하나의 패턴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소니의 전자제품 가운데 일본에서 생산·조립한것은 높은 값으로, 동남아에서 생산·조립한 제품은 같은 종류인데도 훨씬 싼값에 팔리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런 2중가격에 대해 긍정적이다. 소비자들은 싼값에 다양한 제품을 구입하는 이익이 있고 기업들도 첨단 하이테크 제품의 개발·생산은 계속 본국에 두되 세계전략적 차원에서 중저가 제품생산은 동남아쪽으로 돌려 경쟁력을 유지하고있는 것이다.
일본처럼 국내기업들의 역수입도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8천원 정도에 팔리는 신발의 경우 켤레당 국내 생산원가는 보통 4천원. 그러나 동남아에서 역수입할때는 2천원정도에 불과하다.
의류도 운송비까지 포함해 국내생산원가의 절반가격으로 역수입이 가능하다. 물론 이처럼 낮은 생산원가는 값싼 노동력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월임금 1백30달러 정도면 숙련 기능공을 구할수 있다. 중국에서는 1백달러도 채안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내에 생산거점을 둔 업체들은 중저가품의 경우 역수입품을 당해낼수 없다. 결국 2∼3년내에 경쟁에 밀려 동남아·중국으로 진출하든지 아니면 도산할 수밖에 없는 생존의 갈림길에 서게된 것이다.
『그래도 어느정도 자본금·인력이 있어야 진출하지요. 우리처렴 영세업자들이야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종합무역상사의 봉제완구 하청업체인 D사사장의 푸념이다. 그는 대기업의 동남아진출이 늘어나면서 최근 수출용은 물론 국내판매용 상품의 하청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심지어 일부백화점들은 자체 브랜드 상품의 하청을 동남아쪽으로 주고있다는게 그의 이야기다.
이에따라 국내중소업체와 역수입업체와의 마찰도 점차 깊어지고 있다. 중소업체들은 역수입업체들에 원산지 표시라도 철저히 지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즉 같은 제품이라도 국산품과 역수입품을 엄격하게 구분해 생산 기역을 표시, 일본처럼 2중 가격제를 도입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소비자들대로 값싼 동남아산을 국산과 같은 값을 주고사는 손해를 보고 중소업체들은 가격경쟁력은 물론 브랜드 이미지에서까지 밀러 설자리를 완전히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단기적으로 역수입업체들만 폭리를 챙기고 궁극적으로는 중소제조업체의 도산으로 인해 실업의 증가·제조업 긍동화현상까지도 초래한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에대해 역수입업체의 생각은 다르다. 수입개방과 함께 밀려들어오는 중국및 동남아산 제품들에 대항하기 위해서도 중저가품의 역수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과 대만등 경쟁국가들이 동남아 생산제품의 대한수출을 강화하고 있어 경쟁력유지를 위해서도 동남아산 역수입을 증가시키지 않을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실 지금은 제2의 국내산업 구조재편성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유통시장 개방·생산거점의 국제화에 따라 역수입도 늘어나고 있죠.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국제적 경영다각화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고 중소기업은 중소기업대로 대기업이 요구하는 부품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
그러지 못할 경우 대기업은 부품협력선을 중국이나 동남아쪽으로 전환할 수 밖에없고 역수입의 증가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 경제구조의 재편성을 의미하는 셈이죠. 이제 대기업도 정부의 보호막을 기대하진 않습니다. 중소하청업체들도 더이상 대기업에 무작정 기댈 수는 없습니다. 대기업도 지금생존이 걸린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종합무역상사 한 임원의 말이다.
현재 동남아에 진출한 국내업체는 7백여개로 투자금액은 6억5천만달러. 이에 비해 일본의 동남아 진출업체는 4천여개에 투자금액은 1백95억달러(90년말 기준)에 이른다.
일본이 지금처럼 동남아를 안정적인 배후생산기지로 만드는데 10년이상이 걸렸듯이 국내기업들은 아직 동남아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했다.
똑같이 값싼 동남아 노동력을 쓰면 일본기업에 비해 기술이 월등하든지 경영전략이 뛰어나야만 경쟁력을 가질수 있는데 국내기업들로서는 아직 이를 기대할수 없기 때문이다. 또 현지 인력을 교육시켜 불량률을 기대수준까지 낮추는 데에도 2년이상 걸린다는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솔직히 말해 당분간 국내로 역수입하는게 가장 손쉬운 장사입니다.
국내에서는 나름대로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기때문에 제3국 수출처럼 출혈경쟁은 피할 수 있죠. 게다가 중저가품의 경우 역수입이익도 짭짤하고요.』 2년전부터 태국에 진출한 G사 관계자의 말이다.
G사처럼 당분간 역수입을 통해 초기 해외진출의 손해를 줄이면서 일정한 시간이 지난뒤 현지화전략이 뿌리를 내리고 나서야 당초 진출목표였던 현지판매·제3국수출을 시도하겠다는 업체들도 많다.
이에따라 앞으로 동남아진출업체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역수입도 급증할 전망이다. 덩달아 국내 중저가 시장은 무섭게 뒤따라오는 동남아산 수입품, 국내업체들의 역수입품을 비롯해 기존 국내제품등으로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쟁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한무역진흥공사 아-중동부 최병훈씨는 『일본은 기술집약적 고부가가치제품의 국내생산상-노동집약적 상품의 동남아현지생산이라는 분업은 물론 동남아진출 모기업과 부품업체의 동반진출, 동남아 현지판매와 제3국수출, 국내로의 역수입사이의 최적비율등을 경험적으로 달성했다』고 지적하면서 『최근 역수입이 늘고있는 것이 국내상품과의 보완적 관계를 가진다면 모르지만 단순히 국제고임금을 피해 탈출했다가 국제경쟁력에 밀려 또다른 탈출구를 역수입에서 찾는다면 결국 「제닭잡아먹기」식밖에 되지 않을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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