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이기심·무관심 등 풍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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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양연극의 무분별한 복제와 말초적·선정적 연극들이 난무하는 우리 연극무대에 모처럼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집단이 있다.
20대 후반의 젊은 연극인들이 남다른 패기와 열심히 똘똘 뭉친 극단「작은 신화」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l960년대 미국 실험연극의 중요한 집단인「열린 연극」(Open Theatre)의 연극이념을 계승해 집단창작, 즉흥연기와 변신, 소리·몸짓·리듬·침묵 등 이 어우러지는 4차원적 언어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이들의 작업에서 한 사람의 희곡작가나 연출가의 초월적 권위는 철저히 거부되며 배우들 개개인의 경험과 상상력, 자발성과 창의성이 최대한 존중된다.
지난해 발표되어 호평을 받았던『전쟁 음? 악!』이「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 던져진 인간존재를 탐구했다면 현재 최용훈 연출로 공연중인『전쟁 음? 악!2』는 하루하루 전쟁과도 같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평범한 일상성 속에서 일그러진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캐리커처 해 간다.
모두 25개 장면으로 이루어진 이 연극에서 스토리상의 동일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가공할 만한 개인 이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 폭력을 통한 억압과 광기, 인간의 기계화 및 상품화, 의사소통의 불가능, 무관심, 무기력, 소외 등 20세기말의 참담한 말세적 징후들이 단단한 연결고리를 유지하고 있다.
무대는 기본적으로 비어 있으며 벽 주변에 놓인 현 타이어·드럼통·병꽂이 박스 등 이 필요할 때마다 적절히 소도구로 활용된다. 10명의 배우들은 분주한 역할 바꾸기로 변신을 거듭할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신체가 택시 내부·전철 문 등 장면을 구성하는 유용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개인의 왜소하고 소극적인 몸짓에 비해 집단적인 움직임은 역동적인 신체동작이나 아크로바트·격렬한 춤으로 표출된다. TV수상기를 이용한 상징적 화면 사용이나 TV사회자의 육성녹음 더빙, 변사조의 무성영화 수법을 활용한 홍콩영화 흉내 등 이 매우 참신한 기법으로 돋보였다. 또한 전자악기를 통한 생생한 반주와 음향효과 및 노래와의 기막힌 어울림, 배우들의 음성으로 빚어지는 효과음들도 인상적이었다. 그야말로 배우들의 전 신체를 통해 가능한 모든 기능이 총동원돼 온몸으로 텅 빈 공간과 부딪치며 싸워 나가는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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