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약발 떨어진 투기지역 지정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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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발품 팔아 부자 되세요. 재경부도 의정부에 대해 '미군기지 이전 등에 따른 개발기대감으로 향후 상승세가 지속될 우려가 있어 투기지역으로 지정한다'고 그랬잖아요."(아이디 veriteicyc)

지난달 23일 재경부가 부동산가격안정심의위원회를 열어 의정부시를 주택투기지역으로 지정하자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뱅크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이런 글이 게재됐다. 부동산뱅크 관계자는 "매달 신규 주택투기지역이 지정될 때면 '경축 투기지역 지정''정부가 공식 인정한 유망 지역' 등의 글이 게재되곤 한다"고 말했다.

투기를 억제해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며 마련된 투기지역 지정 제도가 오히려 집값 상승의 보증수표로 통하고 있다. 투기과열지구 지정 제도에 대한 비판 여론도 거세지고 있다. 집값 상승을 막는 데는 별 효과가 없으면서 죽어가는 지방 건설경기를 더 죽이는 결과만 낳고 있다는 것이다.

◆제 역할 못하는 정부 규제=2003년 4월 서울 강남구를 시작으로, 올 1월 말 현재 전국 250개 행정구역의 37%인 92개 지역이 주택투기지역으로 지정됐다.

제도 도입 당시 기대했던 규제 효과는 사실상 거의 사라졌다. 가장 강력한 규제가 실거래가 과세였다. 투기지역 내 주택을 팔 경우 기준시가(공시가격) 대신 실거래가격으로 양도소득세를 내도록 한 것. 하지만 올해부턴 모든 부동산 거래 때 양도세를 실거래가로 내기 때문에 이는 '종이호랑이' 규제가 돼버렸다. 투기지역에선 양도세 기본세율에 15%포인트 범위 내에서 가산세율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 조항은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다. 집값 급등으로 크게 오른 양도세에 대해 조세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남은 것이라곤 가계대출 때 기준이 되는 것 정도다. 금융감독위원회가 지난해 새롭게 도입한 총부채상환비율(DTI, 소득.대출원리금.이자액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액이 결정되는 방식)을 적용할 때 투기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등을 통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서울 상계동의 S공인중개사 사무소 관계자는 "투기지역으로 지정하고 나면 오히려 집값이 더 오르는 경향이 있어 투기지역 지정을 정부가 수여한 훈장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투기과열지구에 대한 비판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지방의 부동산 경기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별다른 변화가 없었는데도 수도권과 똑같은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는 부산시는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투기과열지구 해제 요청을 했으며, 광주시도 부동산 가격 상승 요인이 사라졌다며 최근 해제를 건의했다.

◆정부 "아직은 유지돼야"=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이달 9일 "지방의 건설경기를 고려해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 지정을 유연하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한나라당 박승환 의원은 비수도권과 수도권에 대해 서로 다른 투기과열지구의 지정.해제 기준을 적용한다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이번 임시국회에서 다뤄진다.

문제가 있고, 바꿔야 한다는 사실엔 정부나 정치권도 공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재경부 관계자는 "애초 목표로 했던 규제효과는 사라졌더라도 DTI 적용 등을 위해 투기지역 지정 제도는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교통부 이용섭 장관은 지난 5일 "지방 건설업을 육성할 방안을 검토하겠지만 그렇다고 투기과열지구를 해제하겠다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서종대 건교부 주거복지본부장도 "부동산 시장이 확실하게 안정됐다고 볼 상황이 아니어서 현재로선 투기과열지구 해제는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투기지구는 2005년 1월과 지난해 9월 일부 지역이 지정에서 해제됐지만 투기과열지구는 2002년 9월 첫 지정 후 한 차례도 해제된 적이 없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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