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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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난 89년 겨울 7년만에 야구장으로 돌아와 2년동안 한국야구에 회오리 바람을 몰고왔던 백감독의 갑작스런 퇴진은 믿기지 않는 일이었으나 그의 사퇴결심은 확고하다.
백감독이 사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입을 통해 확실한 이유를 들어본다.
-왜 팀을 떠나려 하는가.
▲복합적인 이유때문이다.
첫째 지난해 우승이후 목표가 없어져 야구에 대한 정열이 다소 식었고, 둘째 선수들도 포만감에 젖어 나의 말을 잘 따르지 않는다.
나를 포함, 선수·프런트등 구단전체가 지난해 갑작스런 우승으로 야구에 대한 자세, 우승의 진정한 의미등을 잊고있다.
올시즌 성적이 처진 것이 은퇴이유는 아니다.
-언제부터 사퇴를 결심했나.
▲7월말부터다. 당시 쌍방울전을 치르기위해 전주에 가 있었는데 마침 비가 내려 경기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선수들을 모아놓고 『지난해 우승팀이 4위는 해야되지 않겠는가』라면서 분발을 촉구했다. 그런후 선수들에게 자율훈련을 지시했는데 참가자가 아주 적었다. 투수들은 모두 빠지고 야수들 몇명만 참가했다. 순간 선수들의 안일한 정신자세에 크게 실망하게 됐다.
다음날 우리는 쌍방울에 역전패했다.
투수들이 전혀 공을 던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알아보니 투수들은 자율훈련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화투놀이를 한 모양이었다.
또 어떤 선수는 경기중인데 입에서 독한 술냄새가 풍기기도 했다. 물론 관리를 소홀히한 내 잘못이 크지만 선수들이 내말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더 충격이 컸다. 이때부터 사퇴를 생각하게 됐다.
-지도자라면 선수들을 강압적으로라도 바로잡아야 하지 않는가.
▲물론 과격한 방법도 동원해 봤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수들은 처자가 있는 가장이었고 프로선수라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절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술이나 도박같은 것은 한번 손대면 헤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시간을 때우려고 잠깐 손을 댔겠지만…. 그만두는 내 마음도 사실은 편하지 않다.
LG는 이 기회에 대폭물갈이를 해야할 것이다. 몇몇 선수들은 팀의 건전한 풍토를 위해 과감히 방출해야만 한다.
-백감독이 계속 맡으면서 대폭적인 세대교체를 단행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럴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도 1∼2년 쉬면서 재충전하고 싶고 나와 함께 고락을 같이 하며 우승까지 이룩한 선수들을 내손으로 자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팀을 위해서는 몇몇 선수들을 쳐내야 하는데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사퇴하는 것이다. 이게 진짜 이유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예정인가.
▲현재 운영하고 있는 대리점매출액이 약 5억∼6억원쯤 된다. 여기에서 남는 이익금으로 3식구의 살림은 충분히 꾸려갈 수 있다.
또 오는 11월 일본에서 벌어질 한·일 슈퍼게임에 일본 동해 TV의 해설을 맡게돼 당분간 야구쪽일을 완전히 떠날 수는 없을 것 같다.
-2년간 감독을 맡으면서 느낀 한국야구에 대해 말해달라.
▲현재 미국야구의 추세는 힘과 함께 스피드와 선구안을 중시하는 추세다. 한예로 과거에는 외야수라면 3할이상을 쳐야했으나 최근엔 2할4∼2할5푼정도 쳐도 발만 빠르면 주전선수가 된다. 안타로 진루한 것이나 4구로 찬스를 얻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며 발이 빨라야 공·수에 뒷받침이 된다는 판단이다.
특히 현대야구는 어느한 찬스에 집중적으로 모든 전력을 투입, 승부를 내는 경향이 강해져 선구안과 스피드는 필수적이 되고 있다. 일본도 미국의 추세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으며 한국도 하루빨리 현대야구에 적응해야할 것이다.
-끝으로 LG가 다시 강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태에는 김성한(김성한) 선동렬(선동렬)이, 빙그레에는 이강돈(이강돈) 장종훈(장종훈) 등 팀의 핵이 있다.
어느 팀이나 투·타의 리더가 있어야 하는데 LG는 없다. 김동수(김동수) 노찬엽(노찬엽) 등이 축이 돼야 하는데 김은 입대대상이다. 따라서 김재박(김재박) 이광은(이광은)의 뒤를 이을 리더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 <권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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