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권선거 막는 법개정 급하다/박세일(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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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3대 마지막 정기국회가 열리고 있다. 여기서 다룰 많은 현안중 우리나라 정치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의 하나가 바로 선거법 개정문제다. 이번에 개정되는 선거법이 어떤 내용을 담느냐에 따라 선거의 해인 내년에 우리 정치의 선진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질 수 있는가가 판가름난다.
주지하듯이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인 정치다. 그리고 이 국민주권원리를 실현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유효한 수단이 바로 선거다. 따라서 선거는 민주주의의 시작이요,끝이다. 선거가 혼탁하면 민주주의도 혼탁하고,선거가 바로 서야 비로소 민주주의도 바로 선다.
○정책보다 돈이 우선
오늘날 우리 정치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금권선거풍토요,탈법 선거관행이다. 벌써부터 내년 국회의원선거에 필요한 선거비용이 1명당 20억원이다. 30억원이다 하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실은 이 망국적 금권선거풍토가 오늘날 우리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정치불신,각종 정치적 후진성의 근본원인이다.
금권선거풍토로 인해 경륜과 인품보다 자금동원능력이 큰 사람이 정치를 지배하게 된다. 돈이 있어야 공천도 받고,계파도 거느리고,당선도 될 수 있다. 그래서 정치는 비전과 정책을 경쟁하는 장이 아니라 음성적 정치자금 동원실력을 경쟁하는 장이 된다. 아무리 정치적 식견이 탁월하고 인품이 출중해도 막대한 선거자금을 만들어 낼 수 없으면 정치인이 될 수 없다. 결국 정치적 악화가 정치적 양화를 구축하는 셈이다.
또한 이러한 금권선거·금권정치의 풍토하에선 국민주권 원리는 사실상 형해화된다. 정치가 민생을 외면하고 민의를 저버려도 국민들은 속수무책이다. 금권선거라는 장벽이 유능한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효과적으로 막고 있어 정치는 이미 경쟁성을 잃고 독과점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현행 선거제도를 대폭 개혁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금권선거를 청산」하고 「선거에서의 경쟁성」을 회복시킬 것인가에 있지,대선거구냐 소선거구냐가 이다. 환언하면 입후보자가 동원하는 돈의 양,선거자금의 다과가 선거결과에 전혀 영향을 줄 수 없도록 돈을 함부로 뿌리는 입후보자는 반드시 낙선하거나 당선무효가 되도록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런 방향으로의 개혁을 위해 첫째 우선 선거운동의 자유를 확대해야 한다. 현행법은 시민단체들에 의한 공명선거 캠페인 조차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선거운동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다.
○탈법엔 엄한 벌 줘야
이러한 제약속에서 입후보자는 자신의 인물됨을 충분히 알릴 수 없고 유권자도 입후보자의 인품과 경륜을 알 길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판치고 지연·학연 등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다.
TV·라디오 등을 통한 소견발표,합동 및 개인연설회,호별방문 등을 보다 광범위하게 허용해 입후보자와 유권자간에 충분한 의사소통의 길을 열어야 한다.
둘째 이와 동시에 선거공영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리하여 앞에서 예시한 각종 선거운동의 비용을 국고로 부담해야 한다. 돈이 있는 후보든,없는 후보든 모두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인물됨을 충분히 알릴 수 있어야 하고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러한 기회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보장돼야 한다. 이것이 바로 경쟁정치다.
셋째 돈을 위법하게 사용하는 입후보자가 받는 불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매수등 부정행위나 선거비용 허위보고 등 각종 선거법 위반사범을 반민주사범으로 규정,대단히 엄격하게 다스려야 한다. 현재와 같이 선거법을 마음껏 위반한 입후보자가 당선되고,선거후에도 전혀 책임지지 않는 이러한 탈법적 선거풍토는 결코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된다.
단순한 당선무효로 끝날 것이 아니라 영국에서 처럼 피선거권을 일정기간 제한해야 하고 그러한 반민주인사를 공천한 정당도 당해지역에서의 공천권 행사를 일정기간 제한받아야 마땅하다. 1883년 영국의 선거부정·부패방지법의 철저함과 엄격한 시행이 영국의 혼탁한 선거질서를 바로잡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중요한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유권자 의식도 중요
끝으로 금권선거가 풍미하게 되는데는 유권자들의 정치의식,잘못된 투표관행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 금전수수와 향응제공이 곧바로 표로 연결되는 현실을 이대로 두고선 금권선거와 정치독점을 청산할 수 없다. 따라서 깨어있는 민주시민의식의 제고가 필요하고,이를 위해 국민들이 앞장서 깨끗한 선거질서,바른 정치문화를 위한 범국민 의식개혁운동,민주시민운동을 벌여나가야 한다.
이러한 의식개혁운동이 앞에서 제시한 법·제도 개혁과 함께 진행될 때 비로서 우리의 정치는 금권정치의 늪에서 벗어나 경쟁성을 회복하고,정치의 선진화,민주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선거의 해인 1992년을 맞이하는 이번 가을 정국에서 우리 정치인들과 국민들이 해결을 위해 공동노력해야 할 이 시대 주요과제의 하나다.<서울대 법대교수·법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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