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망대학에 소지품 묻어라”/대입합격 기원 새 풍속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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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여학생방석 7개만 모으면 통과/백일주 맥주마시면 합격 “물거품”/점복집은 부적구입 학부모 북적
『백일주를 마시면 합격한다. 은반지를 끼고 다녀라. 가고싶은 대학에 소지품을 묻어라….』
대학입시가 8일로 「D­1백일」을 넘어서면서 고3 수험생들 사이에 합격을 기원하는 각종 미신적 풍습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백설기 먹기」「자신이 태어난 해에 발행된 동전선물」등 신종풍습과 함께 사찰에 이어 교회에서도 학부모들의 백일기도가 성행하고 점복집에는 부적주문이 밀리고 있다.
5∼6년 전부터 수험생들의 입시불안심리를 타고 확산되기 시작한 대표적 합격기원 풍습이 백일주.
시험 1백일 전에 「대학에 실패없이 진학한 선배가 사주는 술을 마시면 합격한다」는 것으로 지난 7,8일 서울시내 대학로·종로2가 등지엔 만취한 고3수험생들로 만원을 이뤘으며 편싸움·기물파손·절도등 탈선소동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백일주를 마신학생중 낙방사례가 잇따르면서 최근에는 오히려 『백일주를 마시면 낙방한다더라』는 소문이 퍼져 남은 날수를 단계적으로 따져 「99주,88주,77주,33주」를 마시는 유행도 번지고 있다.
또 66일째 되는 날에는 서양식 오멘 징크스(666)에서 나온 발상인듯 아무일도 하지 않고 넘기는 것이 풍습.
백일주는 대부분 소주를 마시며 맥주는 금물.
「거품이 나므로 합격이 물거품된다」는 미신 때문이다.
그러나 탈선을 유발해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이 음주풍습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김수웅 장학관(생활지도담당)은 『백일주 풍습에 대비,일선학교에 교외생활지도를 지시했으나 역불급이었다』며 『입시에 대한 중압감과 긴장에 휩싸인 수험생들이 스트레스해소 차원으로 이같은 풍습을 만들어낸 것같다』고 말했다.
백일주가 주로 남학생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반면 여학생간에는 「은반지 미신」이 유행하고 있다.
속칭 「백일반지」로 불리는 은반지는 『어머니가 사줘야 효험이 있다』는 소문속에 학부모에게도 부담이 되고 있다.
여고 3년생 자녀를 둔 김영혜씨(45·여)는 『딸이 조르는데다 미신이라고 거부하자니 찜찜해 8일 4만원을 주고 사줬다』고 말했다.
백일반지는 지역에 따라 유행·모양이 달라 금반지·은반지가 혼용되고 있으며 실반지·둥근모양등 모양새도 각각. 또한 올해에는 백설기먹기가 유행해 강남지역 학부모들은 8일 백설기를 사다 수험생자녀에게 먹이느라 떡집이 때아닌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이밖에 남학생사이에는 『여학생 방석을 7개 모으면 합격한다』는 다소 불건전한 미신과 함께 지난해부터는 입학을 원하는 대학내에 소지품을 묻는 풍습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한편 학부모들도 합격기원에 가세,8일 서울시내 사찰에는 백일기도 인파로 붐볐다.
이날 경기고인근 봉은사에는 학부모 2백여명이 몰려 공양미를 싼 주머니를 탑위에 올려놓고 촛불을 밝혀 합격을 축원했다.
또한 신촌·미아리 일대 점복집에는 합격기원 부적을 구하는 학부모들이 줄을 이었다. 부적값은 통상 3만∼10만원.
최근에는 백일기도가 사찰외에 교회에서도 성행,재수생 자녀를 둔 이옥자씨(47·여)는 『8일 감사헌금과 함께 9일부터 1백일 새벽기도에 들어갔으며 우리교회에만 이런 신도는 20여명쯤 된다』고 말했다.
중앙대의대 이철홍교수(신경정신과)는 『수험생들의 합격기원풍습은 자기최면을 통해 불안감을 씻고 「나는 합격한다」는 적극적인 소원성취에 대한 희망의 표현』이라며 『입시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에 빠져있는 수험생들에게 자아방어기제적 효과가 있으나 음주풍습은 현실도피적 행태로 오히려 우울증을 유발하는등 득보다 실이 많다』고 말했다.<박종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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