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권위 훼손과 유족항의/김석환 모스크바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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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 소련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진전은 여러가지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73년동안 무계급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피를 흘리며 노력했던 역사적 실험의 실패가 의미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의 판단은 조금 더 시간이 흘러야 하겠지만 소련에서 공산주의 실험과 그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음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과거 건국의 아버지였던 레닌의 권위와 그에 대한 사랑이 없어진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 요즘 모스크바의 분위기다.
모스크바 시의회는 레닌 기념박물관의 폐쇄를 결정한데 이어 최근에는 크렘린앞에 위치한 레닌묘 이전문제까지 거론하는등 3개월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문제를 거침없이 거론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분위기에서 3일 레닌의 유족이 모스크바 시의회의 결정과 최근 레닌에게 가해지고 있는 공격에 항의를 제기해 주목을 끌고 있다.
레닌의 먼 친척인 올가 울랴노바 여사가 제기한 항의의 요지는 『레닌 기념박물관의 폐쇄 결정은 과거 이 박물관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던 선현들을 모독하는 것이며 역사의 단절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울랴노바 여사는 이외에도 레닌묘에 안치되어 있는 레닌의 시신을 이장하려는 시도는 소련 인민들의 전체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며 헌법절차에 따라 소련 인민들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질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보도한 프라우다는 『소련 사회에는 여전히 울랴노프(레닌)를 추모하는 숫자가 적지 않으며 이들의 정서는 레닌의 인척들과 같은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프라우다의 보도를 보지 않더라도 소련 사회에는 쿠데타 분쇄후 나타나고 있는 공산당 및 과거 권위체에 대한 각종 공격,특히 소련의 건국자 레닌에 대한 공격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레닌에 의해 창간된 프라우다가 레닌의 권위훼손 문제를 직접 정식으로 거론하지 못하고 유족의 항의라는 간접 형식으로 제기했다는 것이다.
프라우다의 이와 같은 보도 태도는 그만큼 현재 소련 사회내에 반공산당 분위기가 강력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사실을 종합해 볼때 우리는 격동하는 소련 사회의 분위기를 이방인이 파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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