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행복한 책읽기] 애인도 쇼핑한다고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서 페이스 팝콘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바로 이것. "도대체 '팝콘'이란 이름은 어디서 얻었나요?"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고 친근하면서도 신뢰감을 주는 이 이름이 그의 본명이 아니라면, 그는 진정 대단한 마케팅 전문가다.

1974년 브레인 리저브라는 컨설팅 회사를 설립해 IBM.펩시.BMW 등 세계적인 기업들의 경영 전략을 조언해 주고 있는 그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트렌드 전문가'다. 유효 기간이 짧고 럭비공처럼 튀는 '유행'이 아니라 10년 이상 지속되면서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 되는 '트렌드'에 주목해 미래를 예측하고 기업 컨설팅을 하는 것이 그의 주업무다.

4년 전 '클릭! 미래 속으로'(21세기북스)에서 21세기에 가장 주목해야 할 17가지 트렌드를 제시한 바 있는 그가 새로 펴낸 '미래생활사전'은 독자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

마케팅 전문가 애덤 한프트와 함께 쓴 이 책에서 그는 이제 막 쓰이려는 단어나 미래 사회에서 사용될 만한 단어를 만들어 '사전'이라는 형식으로 소개하면서 미래 생활을 예측하고 있다.

이 책은 사전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가나다 순서가 아니라 주제별로 단어를 정리해 의미적으로 연관된 개념들을 나란히 배열해 놓음으로써 미래에 대한 모자이크 이미지를 얻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노화, 어린이와 가족, 음식과 식도락, 교통수단, 범죄와 테러리즘 등 35개 주제에 따라 제시된 1천2백개의 키워드를 읽다 보면 요란스럽게 뒤섞인 미래 이미지가 머릿속에 조금씩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그가 보여주고 있는 미래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전문화되고 개성이 넘치는 개인주의 사회'라 할 수 있다. 미래엔 개인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제품이 생산되고, 이를 위해 새로운 직업이 등장할 것이며, 사회 문화적인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주장이다.

남들이 싫어하는 음식을 즐기는 '푸드 마초'(Food Macho)가 등장할 것이며 그들을 위한 레스토랑이 인기를 끌지 모른다. 잡지는 독자가 주문한 콘텐츠로 채워진 마이거진(Mygazine) 형태로 바뀔 것이며, 웹 페이지를 관리하고 가꿔주는 '웹 정원사'라는 신종 직업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술을 잔뜩 퍼마신 파티에서 자신을 집으로 데려다줄 '출장 운전사'가 곧 등장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는데, 몇해 전부터 서울의 전봇대를 가득 메우고 있는 '대리운전' 전단지를 본다면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을 것이다.

이런 유의 책들에 담긴 진가는 자신이 이런 책을 쓰려고 마음먹는 순간 드러난다. 독자들은 웃고 깔깔거리면서 페이지를 넘기지만 이 책에 소개된 단어 하나 하나는 오랜 불면의 밤이 만들어낸 상상력의 산물일 것이다. 전문 지식과 창조성을 강조하고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 것인가. 고령 인구가 증가하면서 실버 문화는 어떤 신조어들을 만들어낼 것이며, 가족과 도시는 어떤 형태로 탈바꿈할 것인가. 페이스 팝콘의 머릿속엔 온통 이런 생각뿐이리라.

미국 어느 잡지에선 이 책이 처음엔 흥미를 끌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예측이 빗나가면 독자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페이스 팝콘의 예측대로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가 만들어낼 '요구르트 도시'나 야생동물을 자연 서식지로 돌려보내는 '야생동물 복귀 훈련가'가 나오지 않더라도 그를 원망할 필요는 없다. '단어'라는 나무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라는 숲을 본다면, 이 책은 여전히 유효할 테니 말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우리 삶을 어디로 인도할지 늘 불안한 요즘, 영롱한 상상력의 결정체들로 이루어진 '언어의 정원'에서 다음 세대가 책장에 꽂아둘 사전을 미리 읽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정재승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